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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득 Mar 10. 2024

일기-후편

240310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자 상황은 차츰 나아졌다. 남편의 사업은 나름 자리를 잡아갔고 거처를 옮겼다. 집을 떠나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결국 고향 언저리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손길이 사무치게 그리웠다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사업.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점차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나의 당찬 포부는 자연스레 희미해져 갔다.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는 것. 현모양처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삶의 목표는 조금씩 변해갔다.


 여전히 삶은 치열했지만 나름 먹고살만해졌는지 내 삶의 두 번째 아이가 들어섰다. 그토록 염원했던 첫째는 얼굴을 보기가 참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 넘어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는 끝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병원부터 철저히 알아보고 나름대로 공부도 했다.


 하늘은 자만하는 자를 가만두지 않았다. 행복은 멀리까지 찾아간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무너졌다. 아이가 기형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자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낙태를 권유받았다. 늦추면 늦출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나였다. 드라마 속 이야길 라면 낙태를 하지 않는 주인공이 답답했을까. 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계획 속에 생긴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물 같은 아이였다. 반반인 확률에 운명을 걸어보기로 했고 어떤 쪽이 나와도 최선을 다해 좋은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걱정과 다르게 두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둘째는 말은 늦게 시작했지만 때때로 첫째보다 똑똑한 모습을 보이며 잘 지냈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 과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행복은 금세 익숙해진다. 이제는 새로운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가족의 집. 집이 필요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내심 바라고 있었다. 남편을 부추긴 것은 아니고 동조해 준 정도였다. 청약도 들고 신도시의 아파트 분양도 공부했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남편이 알아서 공부했다. 누구보다 집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이런 것이 가장의 마음인가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흘러가 듯 살아가다 보니 집도 생기고 남편의 일도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모든 것이 순탄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죽었다. 나이가 많지도 않았다.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나는 평범한 전업주부였고 모든 경제활동은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야 그의 무게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핑계로 눈을 감고 살았다. 그가 나에게 남긴 것은 약간의 부채와 끊었다고 말했던 담배 한 갑, 출처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적힌 장부 그 정도였다.


 남들은 100살을 우습게 살아내는 듯싶은데 남편은 쉰을 간신히 넘기고 떠났다. 이제는 내가 그 나이를 한참 앞질렀다. 여전히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이 난다. 신혼부터 나를 울리는 건 항상 남편이었다. 버스를 타고 방황할 때도 남편이 문제였고 둘째를 낳을 용기를 주며 감동시킨 사람도 그였다. 그래도 그와 함께한 30년도 안 되는 시간 덕분에 웃으며 산다. 난 사연 많은 사람 중에 가장 밝은 사람이다.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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