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나홀로, 뚜벅이를 위한 제주 한 달 살기 PDF 전자책이었다. 제주 한 달 살기 중에 머리 속으로 기획해 둔 것들을 돌아오자마자 실행했다. 전자책을 만들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야심차게 텀블벅 펀딩을 오픈했다. 50만원 최저 펀딩 금액으로 진행했지만 9%의 처참한 달성률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
퇴사 후 다녀왔던 제주 한 달 살기는 누군가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인생 경험이었다. 제주는 누구나 꿈꾸는 곳이고 해외 여행에 비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만만한 곳이다. 한 달 살기라는 자체가 돈과 시간에 있어 부담스럽지만 제주도라면 인생에 한 번 쯤 실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혼자, 뚜벅이로 한 달 살기를 다녀왔는데 여행 중 만난 사람들 중 나 같은 친구들이 많았다. 어떤 친구들은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했지만, 어떤 친구들은 혼자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 할 지, 뭘 해야 할지 어색해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제주도는 누구나 가고 싶고 또 갈 수 있는 만만한 여행지이지만, 혼자라, 뚜벅이라 떠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혼행, 뚜벅이 여행 마스터였던 나는 내 경험을 기반으로 혼밥 맛집이나 혼자 할 만한 체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하고 두려움을 없애주면 한 달 살기를 도전하기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어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 너무 잘 팔리면 어떡하지? 성공하면 발리도 가고 베트남도 가고 후속 프로젝트도 만들어야 겠다. 히히히. 이렇게 나의 꿈과 희망을 가득 실은 첫 번째 프로젝트가 힘차게 출항했다.
처참한 실패, 그리고 회고
결과는 앞서 밝혔던 것처럼 처참한 실패였다. 처절한 회고에 들어갔다.
첫째, 소수의 이야기만 듣고 근거 없는 뇌피셜로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후로 약간의 조증 상태였고, 시장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전자책이라는 채널을 선택한 것도 내가 편한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SNS나 블로그, 유튜브 등의 채널에 더 맞는 콘텐츠였지만 전자책이 더 빠르게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SNS 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않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던 내가, 수요나 필요성이 검증 안 된 콘텐츠로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한 뇌피셜이었다.
둘째, 빠르게 포기했다. 야심차게 오픈했지만 초반에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당시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프로젝트에 더 시간을 쏟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며칠만에 야심차게 세워 두었던 마케팅 계획을 백지화 했다. 여행자들에게 도움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초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달성률 몇 %, 후원금 얼마만 눈에 들어왔다. 적은 수지만 내 프로젝트를 후원해 주신 분들을 숫자로만 본 것 같아 미안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조바심이었다. 내 가설을 빨리 실험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자책 제작부터 업로드까지 한 달만에 호다닥 끝내 버렸다. 빨리 결과를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타이트한 일정으로 펀딩을 오픈했고 반응이 빠른 광고를 태워 보았다. 촉박한 일정으로 펀딩 오픈 알림 등 텀블벅이 지원하는 수단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조바심이 든 이유는 퇴사 후 하루하루 모아 둔 돈이 줄어들고 있었고 나는 확실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빠른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만 가득했고 조바심은 결국 실패를 불러왔다.
첫 번째 실패 후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준비된 퇴사를 외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 기반이 없이 퇴사해 버린 나는 자꾸 조바심이 들었고 이대로 순수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처참히 실패만 하고 돈을 못 벌겠다 생각이 들었다.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때의 고민들과 이유, 그리고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퇴사를 고민할 때 나름 나와 회사 생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몇 개월 간은 성과가 없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돈도 좀 모아 두었다. 퇴사를 고민한 과정을 다시 돌아보니 조바심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이것저것 벌려 뒀던 일들의 범위를 좁히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것, 집중해야 할 것을 중심으로 우선 순위를 정했다. 첫 번째 실패처럼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흔들리지 않도록 꾸준히 해야할 프로젝트를 정하고 집중 투자해 보기로 했다.
실패한 경험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았다. 실패했다는 건 뭐라도 시도해 봤다는 거니까.
겁이 많은 직장인이었던 나는 게으름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매사가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평탄한 길을 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잘 안 될 것 같은데, 해봤다가 잘 안되면 사람들이 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겠지? 해보기도 전에 이미 나는 안 되는 이유들을 만들었고 실패한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시도하기가 두려웠다.
퇴사한 지금 첫 번째 프로젝트 이후에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실패를 겁냈던 나는 몇 개월째 꾸준하게 크고 작은 시도와 실패를 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실패의 경험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패한 경험은 데이터, 그리고 회고와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실패의 경험들이 언젠가는 찐 성공으로 꽃피울 날이 있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