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행복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스트레스에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복했던 기억을 아무리 헤집어 보아도 떠오르게 없었는데,
예를 들면 어릴 적 집안 어딘가에서 잠이 들어 있는 나를 아버지가 번쩍 안아 들고 내 이불자리로 옮겨 눕히는 과정에 잠에서 깼음에도 깨지 않은 척 두 눈을 꼭 감았던 적이 있었다고, 그때 참 행복했다고 유시민 작가가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기준해서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기억은 없지만 따뜻했던 한 장면은 있다.
어릴 적 큰 방 안에서 부모님과 네 남매가 옹기종이 누워 잤던 기억이 있는데
주말이면 '전설의 고향'이나 '유머 1번지'를 온 가족이 함께 봤다. 방 안에 이불을 다 펴 놓고 광고를 보며 프로그램이 시작되길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오는 광고가 '사랑의 비너스~'였는데, 이불로 포근해진 방안 공기가 안락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따뜻하게 떠오른다.
요즘 들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한 번 화가 나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들숨과 날숨이 거칠어지는 때가 잦다. 주변 지인에게 말하니 갱년기 증상 같다고 한의원에 가보길 추천했다. 언젠간 내게도 그런 때가 올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넘치는 화를 애써 꾹꾹 누르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버럭 화를 지른 후 밀려오는 후회와 부끄러움에 며칠을 끙끙댔던 기억이 너무 많다.
한 때 우울증이 찾아와 그 감정을 치유하겠다고 했던 모든 행동들이 조증을 불러와 한 동안 조울증약을 복용한 적이 있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조울증인가 싶었는데, 갱년기라면 또 다른 문제라 해결 방법은 결국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 뿐인가.
어떤 한 가지 행위와 방법으로 바닥을 치는 감정이, 불같은 화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는 것 같다. 옷장에서 화사한 원피스를 꺼내 입거나 퇴근 후 지인과 동네 맛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방청소를 하거나 계절 옷을 정리하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이렇듯 일상에서 보물찾기 하듯 꺼리를 만들고 찾아내어 필요할 때 취하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인데 그것도 정신이 말짱하고 이성의 끈이 아직 있을 적에나 가능하다. 가끔 끈이 풀렸을 때는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마구 지르다 한 달 뒤 카드빚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울함의 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조만간 한의원에서 갱년기 상담을 받을 생각이다. 치료의 방법으로 한약을 권하고, 침을 제안하겠지만 뭐든 해볼 생각이다. 지금 보다 나은 나의 일상을 위해 뭐든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