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각
저절로 눈이 떠진탓에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집안을 둘러 보았다.
물고기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자는듯 보였고
저녁내 떠들어 대던 티브도 조용하다.
집안의 모든것들은
주인이 잠이 들기까지
쉼없이 일들을 하지만
불이 꺼지는 그 순간부터는
그들도 쉬는 시간이리라.
하지만
요즈음도 밤낮으로 일을 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보일러다.
겨울내 부지런히 일을 했건만
추위를 심하게 타는 주인은
5월이 되도
보일러를 쉬게 할 생각이 없다.
매일 매일 외부 온도는 상승중이지만
주인의 몸은 온갖 시림 증상으로
몸의 온기도 낮아지고
마음의 온도마져 계속 내려가는 중이다.
그 덕분에
매일 매일 주인이 설정한 온도에 맞추려고
우리집 보일러는
열심히
열심히
아주 열심히
일을 한다.
오늘도 그랬다.
고요한 집안에서
아무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데
보일러 혼자만
계기판 미터기의 숫자를 끌어올리며
쉼없이 돌아가고 있다.
참으로 착실하다.
착실해서 좋다만
보일러 네가
열심히 일을 하면
주인의 몸과
주인의 마음이 따듯해져서 좋다만
그래도 가끔은
주인 눈을 피해서
쉬엄 쉬엄 일 해주려무나.
너무 고분 고분 시키는 대로 다 하지말고
농땡이도 부리고
일하기 싫다고 반항도 해주렴
왜냐고?
아주 우습게도
너에게 일을 시킨만큼
주인의 지갑에서
공과금으로 지출되는 돈의 숫자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