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발가락
동동이의 주요 스트레스 원인인 SSG가 가을야구에 갈 확률은 높아졌다. 주요 스트레스의 원인이 입시가 아니라는 것은 얼마 전에 밝혀져 같이 먹고 자는 동거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다들 이웃나라 불구경 하듯이 뿔뿔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고, 동동이는 김광현의 한정판 유니폼을 입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수시 6장의 카드는 던져졌고, 동동이는 혼란한 가운데, 김광현 선수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도 엉뚱한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SSG가 가을야구를 우승으로 이끈다면 동동이의 수시합격률도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소란스레 서성이는 부모 마음과 새벽 기도를 드리는 마음이나 내가 SSG 한국시리즈 최종우승을 바라는 것은 같은 종류의 마음이라 바득바득 우겨보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는 이리도 엉성하다.
언니는 운동을 잘했고, 남동생은 영특했다. 난 둘째였고, 툭하면 아픈 아이였다. 보통 아픈 손가락에 마음이 기울기 마련인데, 나는 뭐든 애쓰고 투쟁해야 얻을 수 있었다. 첫째의 지위를 나눠 가질 수도 동생과 성별을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늘 이도저도 아닌 채로 놓여 있었다. 붙임성이 좋고 싹싹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내 능력밖이었다. 그렇다고 불행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뭐든 괜찮았다.
내게는 학교를 마치고 함께 할 친구가 있었고, 손 편지를 나누며 글 쓰는 재미를 알게 한 영혼의 단짝도 있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엄마와 누군가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지우려다 실패해서 그냥 낳았지.”
그 현기증 나는 문장은 나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뒤틀리고 기울어진 시선으론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은 내게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앗아갔다. 그래서 비스듬히 거꾸로 보는 방법을 익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죽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는 그럼에도 사랑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자랐다. 매달린 채 안간힘을 쓰며 자라는 기분이라 말하면 이해가 될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아이의 인생 전체를 없던 것으로 돌리는 말이었으니 그냥 한 말이었다고 치부하기엔 가혹했다. 나는 고작 4학년이었다.
상처를 준 당사자에게 치유되지 못한 마음은 투사와 전이를 반복한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마음은 어쩌면 욕망의 투사일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며 좋은 부모를 학습하고 나의 부모를 생각하며 그것과 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것도 무의식적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잘 짜인 판 위에서 좋은 부모를 연기하는 것이었을 수도.
발가락 하나 자유로이 까딱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깡마른 20대의 나는 그 자체로 사라지려는 그러면서 남으려는 상태로 아득바득 살아남아 있었다.
까슬까슬한 홑청의 결을 기억한다.
엄마는 자근자근 밟아 풀을 먹인 홑청을
솜에 꿰매어 요를 만들었다.
그 수고로움은 다 커버린 후에야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 수고로움의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매일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낯선 딸을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았을까.
실수처럼 했을지도 모를 말을
기억하는 딸을 엄마가 모르듯이
홑청을 삶아 요를 만든 엄마를
나는 몰랐다.
모름에도 그 서걱거리는 감각을 살갗이 쓸리도록 부여잡았다.
나의 엄마는 내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매일 사랑을 표현한다.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 반복적인 말이 메시지 창 가득 담기고도 모자라 손가락으로 쓸고 또 쓸어야 끝이 보일 만큼 길게 담겨있다.
동토 같기만 한 마음에 단비처럼 내려 나도 모르는 새 싹이 틀 수 있는 땅이 되어 있었다.
사랑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긍정적인 말의 힘은 올곧다.
이제야 나이 든 엄마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우리 서로 다른 상처를 품고 아직도 자라고 있음을.
행복한 발가락, 기쁨의 손바닥, 짜증 내는 뒤통수, 곤란한 짝다리, 만족스러운 배, 속상한 종아리, 수줍은 귀, 세상불만 볼때기, 시무룩한 손등, 허세 부리는 손가락, 하기 싫은 엉덩이, 핑계 대는 입술, 만사귀찮 허벅지, 나 몰라라 옆구리, 웃겨 죽는 광대, 게으른 등허리, 소란스러운 어깨, 비굴한 무릎 등등.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동그랗게 앉아서 단풍잎 같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동동이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를 닮은 아들은 승부욕이 하늘을 찌르고 표정이 없지만 웃을 때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순간순간 변하는 표정에 별명을 짓는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언제인지 모를 날에 기억하도록.
서로가 서로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행복한 발가락
침대 위에 놓인 아이의 발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이는 걸 본 날이에요.
그 발가락에서 감정이 느껴졌어요. ‘지금 행복해하고 있구나.’
행복한 발가락을 포착한 순간들을 글로 씁니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발가락을 까닥거릴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