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 의미가 되려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동동이와 남편 사이에 야구 관련 전문용어가 오고 갔다. 야구대화가 흥미 없으면 맨날 소화 안된다고 투덜대지 말고 밥알이나 꼭꼭 씹을 일이지 이런 말을 하고 만다.
"야구가 뭔 의미가 있냐?"
"의미가 있어야 해?"
"좋아한다며......"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거지, 왜 의미까지 있어야 해?"라고 톡 쏘아붙이자 나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슬쩍 남편을 바라보자 '네가 나보다 꿀 더 많이 먹었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아, 이 곰발바닥은 내가 맞아야 하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맞아. 좋아하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해. 무슨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그냥 즐겁고 행복한 거 맞지. 의미가 의무는 아니지만, 밥 좀 씹을게(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어보았다). 혼자서 경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 행복하지. 그런데 네가 블로그에 매일 경기 정보를 정리해서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야구를 더 재미있게 느낀다면? 혹은 네 글을 읽고 누군가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순간 네가 좋아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는 게 되잖아. 그게 바로 좋아하는 것이 의미가 되는 순간이야."
"꼭 다른 사람이 좋아해야 의미가 생기는 거야? 난 그냥 나만 즐거우면 돼."
"내 말이 맞아. 그거 매우 중요해. 의미라고 해서 꼭 남을 기쁘게 해야만 생기는 건 아니야. 네가 그냥 즐겁고 만족스럽다면 그 자체가 이미 네 삶에서 충분한 의미일 수도 있어. 길게 얘기해서 미안. 조금만 더 들어봐.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도 연결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거야. 그게 의무라서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게 커지다 보면 주변에 전해지는 거지.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의미란 그런 거야."
대화는 길어지고, 동동이의 표정은 점점 뚱해지고 있었다. 남편은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워야지'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기에 머리를 빠르게 굴려야 했다. 그때 야구는 관심 없어도 오타니는 알고 있던 나는 오타니와 만다라트로 변화구를 날려보았다. 변화구는 효과적이었다.
만다라트는 좋아하는 일을 의미 있는 일로 바꿀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이자 시스템이다.
만다라트는 중심 목표에서 8개 영역으로 확장하며 다시 세부목표로 분화된다. 중심에 "좋아하는 일"을 두고 "그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 혹은 "연결될 수 있는 가치들"을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명상하는 삶과 관련 있는 요가, 마음 챙김, 내면소통, 리트릿, 관계, 행복 등을 둘레에 배치하고 각 가치에서 다시 세부 실천 방법을 적어 의미를 구체화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두면 단순히 '좋아한다'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나의 삶 전체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시각화할 수 있다. '의미'라는 설명하기도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세부 행동 및 목표로 바꿔주는 장점이 있고, "의미는 발견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강조할 수 있다.
만다라는 불교, 힌두교에서 사용되는 우주의 질서, 중심으로 향하는 원형 도형을 의미한다. 마음을 집중하고 깨달음을 얻는 상징으로 쓰여 왔다. 그 만다라에 아트(예술, 기술, 방법)를 합성하여 만든 용어이다. 만다라트는 만다라의 원리를 활용한 기술 또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중심 목표를 세우고 그로부터 방사형으로 구체적인 작은 목표를 확장해 나가면 전체와 부분이 연결되는 구조적 사고를 돕는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를 접했을 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상칼파(Sankalpa)였다. 에세이에 종종 등장하는 상칼파는 의도, 결심, 마음의 선언을 뜻한다. 요가나 명상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으로 단순히 목표라기보다는 삶의 깊은 바람과 가치를 의식 속에 심는 행위이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명확히 하는 내적 다짐이라 볼 수 있다.
두 방식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중심에서 출발한다'는 원리를 따른다. 만다라트가 한가운데 핵심 목표를 놓고 구조를 확장해 간다면, 상칼파는 내면의 의도를 붙잡아 그것을 삶 전체의 전개로 이끈다. 또 두 방식 모두 전체와 연결된다. 만다라트의 주변 목표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듯 상칼파 역시 개인의 다짐이 행동, 태도, 관계로 퍼져 나가며 삶을 구성한다.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도 두 방식은 닮았다. 만다라트가 '좋아하는 일' 같은 추상적 열망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분화한다면, 상칼파는 내적 다짐을 반복하여 일상의 몸짓으로 체화시킨다.
삶에서 즐거움과 의미가 항상 같은 방향은 아닐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의미라는 층위가 더해져야 오래 버틸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은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만 인생은 홈런만 있는 것이 아니니깐.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것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공허와 방향성의 부재는 즐거움 뒤에 늘 따라붙는다.
그래서 작성을 했느냐?
저는 듬성듬성 작성하는 중이고,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동동이는 커다랗고 뚱뚱한 물음표를 가운데 그려두고 뭘하고 싶은지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