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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Jul 20. 2022

믹스커피, 고작 그만큼 덜어낸다고 뭐가 달라지나.

고작 그만큼 덜 바에야 화끈하게 들이부어버리자.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아-아-가 질린 날, 믹스 가루를 분리해냈다.

여름이 한참 온 뒤에야 남들보다 한참 늦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믹스커피를 달고 살던 일상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커피 취향은 무조건 '아. 아-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노 시럽-' 노선으로 전향했다. 2주간의 다이어트 기간 동안 몇 번이나 고비가 있었지만 라조차, 다른 과일주스류들 조차 모두 피하고 오직 아. 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셔왔다.


커피는 역시 아메리카노지.


괜스레 커피 전문가라도 된냥 아아-로 바뀐 취향을 즐기던 7월의 뜨거운 여름 오후, 나의 다이어트 의지도 시들해져 갈 즈음. 오후에 피곤과 함께 불현듯 달달한 믹스가 당겼다.

그래 인생 뭐 있나.


비장하게 믹스 하나를 주섬주섬 찾아 끓인 물에 믹스 봉지를 뜯어 들이부으려다.. 아주 소심하게. 믹스 끄트머리의 가루를 손가락으로 부여잡았다. 다년간 쌓인 믹스 끊어먹기 기술을 발휘하여 손가락의 감각을 살려가며 위쪽의 커피 알갱이만 또르르- 컵에 부었다.


커피 알갱이만 나오려면 딱 요기까지- 라는 느낌이 들 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믹스 봉지를 들어 올렸다. '딱 좋았어.'


봉지에 남은 흰 가루들-만 따로 쏟아보니 커피는 1~2알 갱이 정도만 보였다. 아주 아주 적절하게 흰 가루들만 잘 남긴 통쾌한 오후다.


으하하... 젠장.
이렇게 열심히 덜어내는데 살은 왜 안 빠지는 거야???



고작 그만큼 덜어낸다고 뭐가 달라지나.

나를 잘 아는 이는 나의 이런 처절한 노력을 보며 한 마디 할 것이 뻔하다.


'고작 그만큼 덜어낸다고 살 안 빠져, 운동을 해, 운동을!!!'


내 딴에는 처절하게 노력하고 신경을 쓰고 있는 일들도 제 3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에는 별 것 아닌 미물에 불과한 경우들이 많다. 그런 일들이 부단 믹스커피뿐이랴. 내 인생을 위해 피땀 눈물, 영혼까지 갈아 넣어 최고속력으로 달려온 일들도, 사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면 작은 파닥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거대한 우주의 믹스 커피 가루만한 내 작은 몸짓들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눈앞에 보일 큰 성과물로 크게 발현되기를 고대하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들도 달리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더 달려야 할까.  

 나를  

고작 그만큼 고민을 덜어낸다고 인생, 뭐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화끈하게 들이부어버리자. 고민이건, 열정이건, 슬픔이건. 무엇이 되었든 간에. 화끈하게 빠져버리는 거다. 간헐적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진탕 슬퍼하는 시간을 즐기며, 깨작깨작한 열정을 하나둘씩 꺼내는 것보다 모든 열정을 내 그릇 안에 쏟아부어내는 편이 더 낫다.


니맛도 내 맛도 아닌 어정쩡한 믹스커피를 마시느니 화끈하게 남은 하얀 가루들 모두 들이부어버리고 화끈하게 달달한 믹스 한잔을 즐기는 편이 낫다. 고민은 그다음 차례.  


그래서 결국. 남은 흰 가루들 모두 종이컵에 탈탈 털어 달달한 오후를 보냈다는 이야기... 카페인 가득한 믹스와 함께 찾아온 뱃살은 덤이다.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 외에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종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순간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중 - (에필로그,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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