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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May 30. 2022

5일장이 열리는 동네에 산다는 것

5일마다 사람 냄새를 느끼며 장을 볼 수 있다는 것

나는 5일장이 열리는 동네에 사는 시골 사람이다.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된 이후 한동안 열리지 않던 5일장도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를 기준으로 버스 20~30분 거리  5곳의 동네에는 모두 5일 장이 열린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굳이 여행을 갔다가 찾아야 하는 특별 코스이겠지만 나에게 5일장은 대형 마트보다 더 오랜 추억이 묻어있고, 더 친숙한 삶의 일부이다.


주말 오후, 무심코 달력을 보다가 어? 오늘 장날이네? 생각이 들어 현금 5만 원을 챙겨

구경을 가기로 했다.


나름 읍내 나들이를 나간다며 대충 베이스 화장도 찍어 누르고, 머리도 예쁘게 묶고 나니 장에 나서려는 내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오랜만에 읍내 장에 간다고 신나 하는 모습에 푸하하 웃음이 났다. 동네 대형마트도 슬리퍼 끌고 다니는데 오랜만의 장구경은 살짝 설레었다.



동네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는 장소

5일장이라는 곳은 동네 사람, 아는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을 충분히 만나고도 남을 그런 공간이다.

집 앞 대형 마트에 가서 두부 하나 사 올 때의 차림과 다르게 내가 조금 더 신경 쓰는 이유가 5일장에서는 북적북적 부대끼는 사람들 속에 아는 사람을 꼭 한 명 이상은 만나기 때문.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5일장에 가면 열 걸음 이상을 연속으로 가지 못했을 정도-라고 살짝 과장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부모님은 장에서 친구를 만나면 꼭 나에게도 인사를 시키셨다. 인사를 하러 장에 온건지, 장을 보러 온건지 모르게 정말 다양한 관계로 엮인 부모님의 지인들을 그 좁은 장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A:어쩐 일로 왔어?

B:나? 응~ 고추 말린 것좀 사러 왔지~

A:저~기 oo이 엄마도 왔어. 아래에서 과일 사고 있어.

B:그려? OO이 엄마도 아까 지나가던데?

A:어, 저기 보이네~ 까르르. 동네 사람 여기서 다 만나네


늘상 장에 가면 이런 대화가 오간다. 이 정도로 자주 마주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정모임인 거다. 5일마다의 장에서 보는 정기 모임.


그래서 5일장 정겹다고들 하나보다. 인심 후하게 잔뜩 나물의 덤을 얹어주시는 할머님도 장을 따뜻한 곳으로 인식하게 하지만, 5일장에서의 만남은 그곳을 마트보다는 조금 더 인간미 넘치는 곳으로 포장해준다.




떡볶이와 족발과 어묵과.. 주전부리의 천국

떡볶이는 못 참지.

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인분에 2000원에 파는 떡볶이는 장에서 제일 가비 넘치는 간식 일 것이다. 어묵도 1 꼬치에 500원!!! 매운 건 1000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2000원짜리 떡볶이는  지갑을 열게 할 수밖에. 통 크게 2인분을 포장해서 쓱 건네받았다.

떡볶이 집에서 조금 더 올라간 가게에서 갓 튀긴 어묵까지 포장해와서 식탁에 쫙 펼쳐내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한 끼가 차려졌다.


그다음 주전부리를 탐하러 발길을 옮긴 곳은 족발!

따끈한 족발을 쓱쓱 쓸어 수북이 담아주시는 사이 가판대 앞에 마지막 하나 남은 돼지 데기까지. 3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놀라며 족발 중간 사이즈 하나, 돼지 껍데기 하나- 저렴한 가격에 장바구니에 추가해 넣었다.



간식만 살 순 없잖아

한 바구니에 만원 하는 명란젓!

명란젓은 꼭 항구에 가서 신선한 것으로 사 오던 내가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너무 저렴한 가격에 못 이겨 명란을 가득 사와 참기름 휘휘 둘러 뜨신 밥에 척 올려 먹는 행복. 명란젓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두부집-

이 두부집에서 두부를 사 먹은 지는 20년이 되어 간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서 이 집 두부로 반찬을 해주셨고 이제는 내가 일부러 찾아가는 두부집이다. 마트에서 파는 두부와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고소한 콩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부들한 두부. 이 맛을 한 번 알게 되면 푹 빠지게 된다.


장에 나오시는 상인분들은 지역 장을 순차적으로 돌아다니신다. 두부 파시는 분이 오늘은 A지역 장, 내일은 B지역 장, 모레는 C지역 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5일마다 장이 서니 장이 서기를 5일 동안 기다리겠지만 저 두부집만은 5일을 못 기다리고 그분을 찾아 장을 찾아간다.


그만큼 맛있고 건강한 두부. 믿을 수 있는 재료와 제조 과정. 오랜 시간 장에서 봐오며 신뢰가 쌓인 건강 먹거리 생산자와의 직거래. 바로 이것이 5일장만이 지닌 큰 장점일 것이다.


내가 오징어와 반찬거리를 사는 동안 우리 집 꼬맹이는 아빠로부터 슬러쉬 한잔을 득템하고 있었다. 머리 띵-하게 만드는 포도맛 슬러쉬-

우리 아이도 이렇게 장에 대한 추억을 쌓아가겠지. 내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5일장에 가면 과일도 있고 생선도 있고.. 파리지옥도 있다!!!

올여름 초파리 퇴치용으로 꼭 이 파리지옥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파리지옥을 장에서 만날 줄이야.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이와 함께 보던 다큐에서 봤던 파리지옥을 생활력 있는 아줌마의 시선으로 마주하니 초파리 잡기로 너무 좋겠다 싶었다. 여름철 스트레스를 주는 초파리들을 이제는 파리지옥에 빠트려 버려야겠다. 훗



장에는 옷도, 액세서리도 팝니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장에서 그냥 지나치던 아이템들이 보이던 순간. 5만 원만 쓰고 오겠다는 예산 계획이 틀어졌지만 안 살 수가 없었다.


요즘 어린이 대란 템인 포켓몬 아동복! 사이즈가 없어서 못 사줬지만 역시 포켓몬이 대세구나 싶었다. 옆 가게에서 만난 곰돌이 잠옷은 단 돈 오천 원! 살까 말까 만져보니 원단조차 얇고 시원하게 딱 내 맘에 드는 고오급진 여름 원단! 올여름 홈웨어는 이거구나 싶어 사 왔다.


그리고 만난 삔 가게. 내가 찾던 사이즈의 작은 삔

500원에 사 오려는데 눈에 띈 집게 핀이 너무 예뻤다. 친절하신 할머님께서 지키시는 이 작은 가게는 앞으로 단골 가게가 될 것 같다. 


두 손 가득 담아온 간식들과 반찬과 일용할 양식들.

이 정도 소비면 어느 쇼핑몰 나들이 부럽지 않게 참 야무지게 잘 샀다 싶었다.



오늘도 장날을 기다려

살림을 하며 대형마트도 가고, 새벽 배송도 이용한다. 대형마트의 장점도 있고, 동네 식자재 마트의 특색도 좋아한다. 새벽 배송은 없으면 큰일 나는 생활의 동반자이다.


그럼에도 5일장을 기다리는 이유는 따끈한 어묵 국물에서 솔솔 풍겨 나오는 사람 냄새가 여전히 우리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집 앞까지 새벽에 배송해주는 배송 시스템의 장점에 기대어 살고 있긴 해도 여전히 갓 삶은 장날의 족발이 더 따듯하고, 또 왔냐며 알아봐 주는 과일 가게 이모님이 정겹고, 지난주에 재료 소진으로 구매에는 실패한 만두 가게 아저씨의 손맛이 그리워서이다.


사람 사는 냄새.

코로나가 덮친 2년 간의 텅 빈 장 거리가 참 쓸쓸했는데 조금씩 활력을 되찾는 장 거리가 그래서 더 반갑고 정겹다.


그래서 오늘도 5일 후의 장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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