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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Sep 05. 2022

코에 바람을 넣는다. 그렇게 계절을 걷는다.

걷자.

나의 눈동자가 흔들림을 눈치챈 모양이다. 아무리 감추고 혼자 숨어 이겨보려 했지만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다. 평소와 달라진 걸음걸이, 확 줄어든 생기, 무엇보다 흔들리는 내 초점. 하긴 정상으로 보이는 게 더 이상한 거지. 


걷자.


빈 공간에서 혼자 애써 눈물을 훔치고 숨을 고르고 있던 내게 아무 말 없이 건네 준 누군가의 ‘걷자.’라는 말. 한 봉지의 약보다 더 필요했던 말이었을지도. 사실 모든 것이 다 귀찮았지만 내밀어준 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기에 약을 삼키듯 우선 같이 걸었다. 걷는 동안 내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생각이 많을 때는 그냥 걸어. 걸어봐.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 발자국도 걷는 것을 싫어하는 내게 걷는다는 행위는 평소와 아주 다른 행보를 의미했다. 걸을 시간에 편하게 앉아 커피나 마시고 엎드려 누워 잠이나 자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해왔다. 


‘가만히 걷는다’(신유진) 책을 읽으면서도 책의 제목보다 첫 번째 목차인 ‘잠이 달콤한데’라는 문구를 더 사랑하는 나인데. 가만히 걷느니 차라리 잠이라도 더 자고, ‘생산적인’ 무엇을 해야지, 가만히- 걸으면 뭐가 나와? 싶었다. 그럼에도 믿어보기로 했다. 걷자. 걷자. 



 계획이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속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았어야 했다. 우리의 신경은 늘어져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예민한 상태로 매질을 원하는 노예처럼 있어야만 했다. 우리는 남부 바다의 커다랗고 밍밍한 망고 대신에 새콤달콤한 그 귀한 열매를 맺기 위해 도시로부터, 바보 같은 짓으로부터 시간을 빼앗아야 했고, 무용한 일과로부터 훔쳐와야 했다. 꿈에 그리던 은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프랑수와즈 사강_눈 속에서 쓰다. -‘가만히 걷는다’(신유진) 중-


나는 그 느리고 단조로운 시간을 좋아했다.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고, 나무가 몇 그루인지 세어보면서 조금은 무미건조한 고독의 맛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 출입구까지 한 친구를 바래다주었는데, 그 사이에 수위가 문을 잠그는 바람에 나는 혼자가 되어버렸다. 낯선 파리에서 온전히 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수아즈 사강_어린 시절에 만난 부랑자. -‘가만히 걷는다’(신유진) 중-



평소의 걷기에는 ‘목적’이 있었다. ‘30분 걷는 동안 OO 프로젝트 아이이어 구상 끝내기’라던지  ‘걷는 동안 이번 주에 할 일 계획 세우기.’처럼 걷기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목적적이고 수단적으로 행해왔다. 하지만 공황이라는 녀석이 찾아온 후에는 걷는 동안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그냥’ 걸었다. ‘가만히’ 걸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언가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걸었다. '이 터널의 끝을 나가면 빛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여유 따위 없었다. 이유 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걷는다는 것의 실체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걷는 길'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을지라도, 눈앞에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펼쳐졌다. 발 끝에 차이는 돌덩어리들의 질감, 쫑쫑 거리는 새소리들의 작은 지저귐, 하늘 사이 조각조각 흰 구름들의 깃털 같은 움직임, 바람에 살랑이며 반짝이는 나뭇잎과 햇빛의 눈부심. 이 귀한 걸 모르고 살아왔더랬다. 걸음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귀와 눈과 뺨에 닿는 바람의 촉감과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삶이 힘든데,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고작 자연이라니. 나를 일으켜줄 키를 고작 바람이 가지고 있었다니. 허무함과 반가움이 버무려진 순간 내 표정을 덮고 있던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코로 바람결이 느껴진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아예 벗어버렸다. 계절의 냄새. 햇빛에 반짝이는 숲의 향기가 적당하게 바람과 비율을 맞추며 코로 들어왔다. 그 계절을 온전하게 빨아들여 온 몸의 세포들 사이사이로 퍼트렸다.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라고 탄식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 터진 울음.  


이렇게 맨 손으로. 내 다리로 잠시 나와 걷기만 하면 행복이 있었는데, 이거 하나를 하지 못해 그리도 많이 울었구나. 억울함과 속상함이 터져 나온 울음 끝에 눈물을 닦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늘 그 자리에 있던 하늘, 스쳐 지나가는 조각구름들. 


마스크 너머로 그 계절은 늘 그 자리에서 나에게 바람을 쐬여주고 있었다. 나를 감추고 사느라, 표정을 마스크로 덮은 요즘의 나처럼 무색무취로만 느껴졌을 뿐. 


마스크를 내리고 걸으면 그 계절은 늘 내 편이었다. 
온전한 나의 시간, 온전한 내 편. 


그 후로 마스크를 내리고 코로 느껴지는 계절을 종종 즐기기로 했다. 일상의 모든 무게를 내려두고 가만히- 걷는다. 바람에게 위로받고 햇빛에 고민을 바짝 말려두며, 잡념은 지저귀는 새들에게 내맡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코로 들어오는 달콤 싱그러운 바람이 망각의 향수처럼, 모든 것을 잊게 한다. 계절이 느껴지고 햇볕이 온전하게 느껴질 때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계절 바람이 그렇게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걸었다. 


약의 도움 없이, 의학적 도움 없이, 그저 걷는 것으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계절이 바뀌며 점차 일상을 짓누르던 생각들도 바람 따라 떠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코에 들어오는 콧바람으로 계절을 느낀다. 


그냥, 걷자.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걷자. 가만히 걷자. 계절이 느껴지고 햇볕이 온전하게 느껴질 때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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