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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Aug 14. 2022

그날 밤의 곱창전골이 나를 끌어안았다.

소크라테스의 ‘선하게’란 ‘행복하게’란 뜻이다.

모든 것이 잊히기에 충분한 소울푸드, 곱창전골이 나를 끌어안아준다. 캬- 쌉쌀한 인생, 눈물을 삼키니 인생, 참 달다.  

걸쭉한 내 영혼의 안식, 곱창전골.


A: 순댓국이 좋아, 만두전골이 좋아?

B: 음 순댓국은 별로야. 자가 격리기간에 방에서 순댓국만 먹었더니 올드보이 찍을 것 같은 느낌이야-

A: 그럼 만두전골이 좋아, 아님 순대전골이 좋아?

B: 와. 진짜 고민된다. 만두전골은 깔끔한 맛이고, 곱창전골은 걸쭉한 매력.. 뭘 먹지?

A: 지금 맛을 설명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인 거지? 그래서 뭘 먹을 건데.

B: 빙고, 정답! 음… 오늘은 곱창전골 고! 안 깔끔한 맛을 먹고 싶어.

A: 곱창전골이 안 깔끔해?

B: 그런 거 있잖아, 만두전골은 깔끔쟁이 맛인데 곱전은 쏘주 한 잔 해야 할 것 같은 터프한 맛! 오늘은 곱전 먹자!!


그날의 메뉴 결정은 유난히 어려웠다. 칼칼하면서도 적당히 배를 두둑하게 부르게 해 주고, 알코올을 부르는 맛이 필요했다.  


B: 대신 포장해가자. 편하게 오래 먹고 싶어. 후다닥 끼니를 때우려 먹는 것 말고, 천천히 여유 부리면서 먹을래.. 술도 한 잔 할까?



몇 년 전, 한 연예인의 곱창 먹방이 화제가 되어 전국적으로 곱창 열풍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그동안 곱창은 ‘삼겹살’ 혹은 ‘치킨’에 비해 외식 문화 테이블에서 조연 역할에 불과했다.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곱창이 회자된 이후, 전국적 수요 급증으로 곱창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에서 2020년 상반기 외식업 희망퇴직자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기, 곱창, 막창을 합한 고깃집 키워드가 1만 472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위를 지키던 커피를 제친 결과로,  곱창 열풍을 실감할 수 있는 수치로 분석된다.


그 해 여름, 왜 사람들은 ‘스테이크’가 아닌, ‘곱창’에 열광했을까? 당시 그 연예인은 대 낮, 청바지에 나시티 차림으로 길가 테이블에 앉아 곱창을 먹었다. 볶음밥까지 큰 술 떠서 한 입 가득 먹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 연예인이 만약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잘 꾸며진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며 먹는 스테이크를 먹었다면? 포크에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묻지 않게 냅킨으로 닦아가며 예쁘게 먹었다면? 스테이크 열풍도 가능했을까?


시청자들 눈에 비친 그 곱창에는 단순한 음식의 맛 이상의 something 무엇!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소울푸드(soul food)라고 부른다.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또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지칭한다. tv에 비친  곱창은 소울 푸드의 두 가지 정의에 모두 부합했다. 지글지글 불타는 곱창의 소리는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퇴근 후 시간에 대낮에 청바지 입고 길거리에서 먹는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는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고단하고 퍽퍽한 열기 가능한 일상 속에서 털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누구나 다 그녀와 같이 헝클어지고 싶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곱창은 영혼의 안식-을 느끼게 해주는 현실의 도피처, 오아시스, 소울푸드-로 등극할 수밖에.





곱창전골 포장을 선택한 날, 나에게도 영혼의 안식이 필요했다. 마음은 지쳐있었고 날은 덥, 일상은 팍팍했고, 그나마 쉴 수 있는 금요일 밤이겠다.. 그야말로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위한 곱창 먹기 딱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곱창구이로는 부족했다.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과 깻잎 향 솔솔 풍기는 걸쭉한 맛의 곱창전골이 나의 마음을 걸쭉하게 당겨줄 것만 같았다. 거기에 몇 프로쯤의 알코올을 함께 섞으면 더할 나위 없이 내 영혼을 달래줄 밤으로는 제격이지.


그래서 그날 밤은 곱창전골에 기꺼이 내 삶의 무게를 다 던져 넣고 흘려버리고 싶던 눈물도 부어버렸다. 모든 것이 잊히기에 충분한 소울푸드, 곱창전골이 나를 끌어안아준다. 캬- 쌉쌀한 인생, 눈물을 삼키니 인생, 참 달다.  



나의 공황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상대의 슬픔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가까운 누구에게라도 들키기 싫었다. 

그래서 증상이 나타난다 싶으면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안방 화장실 문과 화장실과 연결된 파우더룸의 문을 모두 닫으면 이중 차단이 되어 거실에서는 화장실의 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 가족들에게 내 모습을 감추며 공황을 맞이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그날도 증상이 나타날듯하여 화장실로 후다닥 대피했다. 화장실 구석에서 심호흡을 하며 상황을 이겨내려 했으나 결국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헐떡이는 숨구멍 사이로 무언가가 나를 죄여 오는 느낌에 119라도 부르고 싶었다. 몇 프로쯤 남아있는 실낱 같은 정신으로 파우더룸 밖 안방의 핸드폰을 가지러 가고 싶었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화장실 바닥에서 장렬히 전사해야 했다. 


웃긴 것은 도저히 몸을 못 가누는 상황에서도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정신으로 ‘우리 집 화장실 바닥은 깨끗해서 다행이다. 여기서 자도 되겠네. 청소를 싹- 해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렇게 수십 분이 지나자 내 몸은 진정을 찾아갔다. 공황이 참 웃긴 것은, 상황 종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정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 한참 최고조의 상황에서는 몸이 덜덜 떨리고 숨쉬기가 힘들어져 정말 큰일 나겠구나 싶은데, 그 고비가 넘어가지면 부스스 자리를 털고 내 두 발로 화장실을 걸어 나올 수 있게 된다. 사람 참 민망하게시리. 거짓말 같게..


그리곤 또 바로 웃을 수도 있게 된다.


간혹 공황으로 힘들어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방송 생활하잖아. 멀쩡하게 일상생활하잖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직접 겪어보니 함부로 그들의 웃음을 보며 ‘안 아프네’라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상대의 슬픔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제삼자가 ‘공황장애, 그거 괜한 핑계 아니야?’라며 괜한 평가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아픈 상대에게 더 큰 생채기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자가 찰나의 순간, 웃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 자가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 순간인 것이다. 혹은 그렇게 해서라도 본인의 아픔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중이라는 표시일 것이다. 그 웃음 전후로 그 자는 한 바가지의 눈물을 흘리느라 매우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그 자의 웃음을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저, 같이 웃어주며 품어주시라. 그 자가 혹시라도 당신이라면, 담담하게 자신을 끌어안자. 애썼다. 참 잘 애쓰고 있다. 그러니 웃어도, 울어도 다- 괜찮다. 충분히 울고 충분히 웃자. 


곱창전골 뜨끈하게~ 한 술 뜨면서!!!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선인지 악인지에 무관심하면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는 ‘멋진 삶’이라고 말했으나 아우렐리우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소크라테스는 ‘선하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선하게’란 ‘행복하게’란 뜻이다.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중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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