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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Aug 02. 2022

샛노란 겨자 냉면의 내공

적당한 뱅어포와 적당한 디포리로 살며 덜어내는 삶의 무게

뱅어포로 육수를 낼 수 없고, 디포리로는 뱅어포 구이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내면의 힘으로 오롯이 자신의 색과 향을 우려내며 사는 세상살이가 때로 힘들고, 종종 버겁습니다. 그럼에도 나답게 사는 마음의 근육과 자유를 찾아. 불필요한 무게들은 어내고, 덜 기대하며 덜 된 나를 끌어안고 사는 삶은 행복한 것이라고 우겨봅니다. 테스형의‘선하게’란 ‘행복하게’라는 의미라는 해석을 믿습니다. 덜덜덜

모든 이들에게 첫 만남은 매우 떨리고, 긴장되는 자리이다. 특히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 자리는 더더욱.


지나가는 누군가가 봤더라도 그 식사자리는 시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며느리가 긴장한 자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껏 차려입은 셋업 복장, 솔-톤의 말투, 꼿꼿한 태도로 앉은 자세. 10년 전쯤의 나는 그렇게 꽁꽁 얼어붙은  시부모님과의 정식 첫 식사 자리 놓여졌다.


장소는 한 여름의 꽁꽁 살얼음 동동 뜬 냉면집-


음식이 나오기 전, 어색한 침묵을 깨려는 시도로 몇 마디 대화가 오갔고, 주문한 냉면이 나왔다.


왜 냉면집일까? 첫 만남인데.. 첫 만남의 정석은 한정식 코스가 국룰 아니던가?


(물론 이미 사전에 상견례 자리에서 한정식 코스 요리를 먹었고, 따로 비정식 어머님과의 만남 자리에서 횟집 풀-코스도 사주신 이후였다.)


찰나의 순간, 왜 냉면이 우리의 첫 메뉴가 되었는지 영문도 모른 채, 한 젓가락을 뜨려 할 때쯤- 놀라운 광경에 모든 생각과 내 젓가락은 정지되었다. 시부모님, 신랑, 도련님 서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겨자를 휘-휘- 냉면에 돌려 넣으시는 것 아닌가?

이 정도 수준이면 겨자가 메인 토핑이지 말입니다.


평소, 식초 두어 방울만 넣어 먹던 나는 땡그래진 눈으로 멈칫할 수밖에. 나까지 총 5명이 앉은 식사 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4명이 모두 겨자를 휘휘 듬뿍 둘렀으니. 20대의 어린 나는 놀랄 수밖에.


그동안 내가 냉면을 먹고 살아온 방식이 잘못된 거였나?



냉면일 뿐인 한 끼 식사를 앞에 두고 내 지난 인생까지를 되짚어볼 일인가? 몇 초 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동네 삼촌들이 경양식 집에 처음 데리고 갔던 날,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어느 손으로 쥐고 먹어야 할지 눈치 게임을 하던 옛 기억까지 소환되려던 찰나,


 '일단 나도 한 번 넣자.' 싶어 겨자 통을 건네받았다. 매울 텐데.. 한 두어 방울, 아니 세 방울 소심하게 떨어트다. 한 입 후루룩- 아니, 조신하게 먹느라 한 입 깨작- 먹는 순간, 눈앞에서 겨자 통이 수시로 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초반에 겨자를 탔던 건 베이스 정도의 역할에 그쳤나 보다.


이후부터는 면을 한 젓가락 들어 올려, 면 위에서 멀찍이- 겨자를 뚝-뚝- 두세 방울씩 떨어트려 드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온 가족이! 이게 무슨 진풍경일까. 겨자를 넣고 넣고 또 넣고... 계속 넣으시니 육수는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갔다.


한 젓가락 들어 올려 겨자를 추가하여 먹는 가풍-


이 정도면 가풍이다!!!     


어린 20대의 나는 순진하게도- '가풍이니 따라야 한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가풍은 따라야 한다. 똑같이 겨자를 넣자.
나도 또 넣고, 더 넣자.
그래야 예쁨을 받을 것 같다..??


이 무슨 시트콤 같은 상황인가. 시댁 식구들과의 첫 만남에서 겨자 배틀이라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에서 밀리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적 느낌에 생전 처음으로 냉면에 내 인생 최대치의 겨자를 사용해 한 그릇을 겸허히 비웠다. 겨자가 조연이 아닌 메인으로 등극한 냉면은 다 먹은 후, 냉면 육수는 노랑 냉면으로 변해있었다. 그때의 맛은 사실 코로 들어갔는지 어쨌는지 기억은 잘 나질 않는다.


(겨자도 잘 넣고) 가풍에 따라 잘 먹는 며느리를 보신 시어른들께서는 식사 후, 흡족한 미소를 보이신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운 것을 아주 즐겨드셨다.) 겨자 배틀에서 잘 살아남아 얻은 합격 배지라고 해야 할까.


겨자 배틀의 최후. 노란색으로 변해버린 냉면 육수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서야 그날의 첫 메뉴가 왜 냉면이었는지 온전히 이해했다. 나를 데려가신 식당은


1. 그 지역에서 꽤 전통 있고 유명 평양냉면 맛집이었다. 맛이 보장된 맛집을 데려가고 싶으셨던 것이다.


2. 온 가족이 외식 장소로 좋아하시는 곳이었으며, 가족이 아끼시는 장소였다. 가족들이 자주 가던 편안한 공간에서의 부담 없는 식사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시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가족의 아지트를 내어준다는 마음의 표시였을지도.


3. 그 집 스타일의 평양냉면은 적어도 수도권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서울, 경기 지역의 평양냉면 식당 어디를 가도 이 맛과 유사한 곳은 없다. 평소에 못 먹는 특수한 맛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마음을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4.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집 평양냉면 전국에서 제일 맛있고 나에게 제일 맞는다. 초기 입문자에게 부담스럽지 않을 적당한 간과 면의 메밀향이 매력적인 곳. 메밀면의 편안함이 먹은 후에도 속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곳.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시댁에 오면 내가 먼저 냉면 먹으러 가자고 조른다. 의도하지 않으셨겠지만 나에게 인생 맛집-을 하나 만들어주신 셈-





그때는 달랐고, 지금은 다르다.

10년 전, 그때의 긴장했던 젊은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예전에는 바짝 긴장해서 말라비틀어지기만 했던 뱅어포였다면, 지금은 적당한 삶의 풍파를 머금고 있는 디포리-같다. 적당한 푹신함으로 주변 자극에 푹푹 눌려지기도 하고, 은근히 오래 만나면 매력적으로 우려 질 만한 나만의 풍미도 머금고 있다.


말라비틀어졌던 젊은 시절의 뱅어포였던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는 방법 초차 몰라 양념에나 발라져야 그 특색이 보였다. 어린 나는 내 이야기를 주변에 풀어낼 줄 몰랐다. 내 주장도 잘 못했다. 내 색도 없었고 내 생각도 없었다. 가풍인 줄 알고 영문도 모른 채 겨자 배틀에 참여해버린 것만 봐도 어리바리한 뱅어포였다. 다른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젊은 시절을 보냈을지라도 나는 그 부분에서 매우 미숙했고 다른 이들과 유독 달랐다. 나를 꺼내놓는 방법을,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법 조차를 몰랐다. 그러니 내 속은 마음이 문드러졌고, 그런 나를 바라봐야 하는 주변인들도 답답해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랐다.


지금의 디포리 아줌마는 적당히 말랑하게, 적당히 멜랑꼴리 하게 나를 세상에 꺼내놓을 줄도 알고, 나의 생각을 표현할 줄도 안다. 나의 생각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법을 터득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덜 무겁다. 그때는 다른 이들과 달랐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아버님, 냉면 먹으러 가요.
저 3개월 전부터 먹고 싶었다고요. 냉면 먹으러 내려왔어요.
제가 쏠게요~!
근데 전 비냉 하나, 물냉 하나요. 둘 다 먹을래요~
이제는 나의 인생 맛집, 인생 냉면
물냉과 비냉이 고민될 때, 둘 다 먹음 돼지:)


세상 사는 방법에 미숙했고, 세상에 나를 꺼내놓는 방법에는 더 부족했다. 이제 갓 세상에 나왔으니 덜 익었을 수밖에. 여전히 삶은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최소한 덜 힘들고, 더 여유로워지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때는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



적당한 뱅어포와 적당한 디포리로 살며 덜어내는 삶의 무게


살다 보니 별거 아니더라.


적당한 긴장감과 꼿꼿함으로 나를 덜 드러내야 할 경우에는 뱅어포의 자세를 취한다. 살다 보면 주변의 목소리를 잘 들으며, 나를 드러내기보다 주변과 조화되어 조연의 역할을 맡아야 할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기꺼이 뱅어포를 자처한다. 내가 덜 드러날지라도 난 어디 안 간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 보면 내 향이 자연스레 배여 나온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꼭 옳지 않거나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더러 디포리처럼 적당히 내 목소리를 진하게 풍겨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사회생활 n연차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많은 관계를 경험할수록 더 그렇다. 나의 경우에는 나를 세상에 꺼내놓은 후부터는 다른 재료들, 다른 이들과 기꺼이 버무려지기를 택하면서 내 안의 짐이 덜어지기 시작했다. 표현하지 못해 끙끙 앓는 과거보다 나아졌다. 내 목소리를 냄으로써 얻게 된 효과는 내면세계가 덜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밤에 잠자기 전 누워 이불 킥을 할지언정 아무에게도 털어내지 못한 마음의 무게로 혼자 짓눌리는 일들은 덜해졌다.


물론 뱅어포와 디포리 사이의 캐릭터 설정에는 적당한 줄타기는 필수다. 적당한 뱅어포와 적당한 디포리 모드를 오가며 삶의 무게를 적당히 덜어내기도, 담아내기도 하는 삶은 분명 더 풍미가 깊어질 것이며, 덜 고단할 것이다.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적당한 뱅어포와 적당한 디포리로 삶의 무게를 덜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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