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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Sep 04. 2022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중요한 것은 항상 말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야.

싱크홀, 일상의 검은 구덩이 같으니라고.

공황은 갑자기 꺼져버리는 도로 위 싱크홀 같은 존재였다. 방금 전까지도 멀쩡한 도로였음에도 1, 2초 사이에 지하 깊은 세계로 푹 꺼져버리는 일상의 검은 구덩이. 


미리 저, 멀리서 구덩이의 조짐을 느끼면 돌아가거나 멈춰 설 수라도 있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파여버릴지 모르는 것이 우리네 마음.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 무심코 툭 던진 말 한마디에도 마음속 도로에 싱크홀이 파여버리면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쑥- 빠져버린다. 


안타깝게도 이 나이가 먹도록 내 마음 가눌 방법을 알듯 말 듯. 한 번 마음의 싱크홀에 빠져버리면 한 번에 점프해서 쏙-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남들에게는 훈수도 잘 두며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마인드 컨트롤 방법에 대해서는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잘 아는데도, 막상 내 일로 싱크홀이 닥쳐버리면 모든 것이 다 싫고, 다 모르겠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언제 빠져나와질지, 언제 이 어둠이 끝날지 도통 모르겠고 생각조차 할 힘이 없을 때, 저 위- 지층에서 보내준 동아줄 같은 말 한마디가 잊히질 않는다.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어둠이 삶 속에 잠식해서 쌀 한 톨 못 먹겠을 때,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는 한 마디에 ‘못 먹을 것 같아요.’가 아니라 ‘그럴까요?’하곤 쭐래쭐래 따라나섰다.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갈까 싶었지만 목구멍에 뭐라도 밀어 넣고 배 속을 뜨듯하게 채워내는 순간들마다 한 스푼, 한 스푼씩 마음속 구덩이의 흙을 퍼다내는 느낌이 들었다. 


다 사람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힘들어도 먹어가며 힘들어야지.  


라는 말에 풉- 심지어 밥을 밀어 넣다가 웃어버렸다. 울다 웃으면 안 된다던데 울다 웃어버렸다. 


오. 울다 웃어지기도 하는구나. 그래도 되는 거구나. 웃어도 되는 거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냐? 덜 된 인간아! 밥이나 먹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바람을 맞으며 걷기도 하는 사이. 싱크홀의 맨바닥에서 올라와 빼꼼- 지층에 나올까 말까 손을 올려두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울고 있던 나를 다 보고 있었다는 시선으로 하늘빛은 더 쨍쨍 나를 내리쬐었다. ‘으이그- 덜 된 인간아, 빨리 올라오기나 해.’ 라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무심히도 참 파랬다. 


‘고작 밥 한 끼 먹었다고 웃을 거, 기왕이면 대충 웃고 살아.’  


햇빛이 내 뒤를 따라오며 하고 싶던 잔소리를 마저 퍼붓는 그날의 오후가 싫지는 않았다. 


고작 이 정도 말 한마디에 웃음이 날 것 같다면, 당신도 덜 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누군가 밥 먹자고 손 내밀었을 때, 울다가도 쭐레쭐레 따라나가시라. 못 먹을 것 같아도 분명 밥은 넘어간다. 이 일도 분명 넘어가진다. 


그리곤 햇빛의 잔소리 샤워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득해진 배를 두드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말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야. 

옆에 늘 있어주면 그게 친구지 뭐. -스폰지밥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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