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글쓰기. 밤 12시는 넘었지만 잠자기는 아까워.

잘 쓰지는 못하지만, 쓰고 싶어 하는 마음.

by 구자

이런 애증의 글쓰기.

밤 12시가 넘은 밤.

최근 일주일 내내 낮에는 바쁜 업무가 피곤했는지 밤 11시 전, 잠이 들어버렸다. 그 덕에 일주일 동안의 비축분 잠이 축적되었는지 오늘은 어쩐지 내 몸이 밤 12시인데도 아직 깨어있다. 이렇게 말랑한 상태로 밤을 혼자 보낼 수 있게 된 날, 잠을 자기에는 아깝고, 누워서 쇼핑이나 할까 하다가 내 마음속 한쪽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방. 글쓰기 방이 나를 똑똑- 노크한다.


이런 애증의 글쓰기.


학창 시절부터 나는 글쓰기와 밀당을 하듯. 그 녀석을 애증의 관계로 생각해왔다. 백일장 대회에 나가 덩그러니 시제를 받고 나면 어찌나 첫 문장이 그리도 생각이 안 나는지.. 백일장에서 먼 허공만 바라보고, 빈 원고지만 보면서도 난 글쓰기를 놓지는 않았다. 어떤 밤에는 학교 글짓기 대회에 제출할 글을 쓰려고 원고지를 부여잡고 밤을 새우며, 잘 써지질 않아 씩씩거리면서도 마지막 원고지 페이지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펜을 놓지는 않았더랬다.


쓰기 싫다- 쓰기 싫다- 모르겠다-

하면서도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후, 다시 원고를 읽어보았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란.


그 맛에 이 나이가 되도록 밤이 되면 글쓰기가 고프다. '쓰기 싫다.'라는 말속에 숨겨진 속 뜻은 '잘 쓰고 싶다.'가 아니었을까.


잘 쓰고 싶은데 잘은 못쓰겠고, 그래서 쓰기는 싫은데 쓰고 싶은 상태.

그냥 이불 덮고 누워 자면 편할 텐데 굳이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괜한 셀프 고뇌에 빠지는 이 고독한 시간은 사실은 마약이다. 싫은데 좋은- 그런 애증의 글쓰기. 애증의 브런치.


그런 '글쓰기'라는 녀석을 오래된 연인처럼 대하며, 연애를 하듯 글쓰기라는 녀석을 가끔씩, 종종, 때로는 자주 만난다. 사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처럼, 첫 문장을 쓸 때 설레거나 머리가 백지가 되는 느낌들은 살짝 사라졌다. 나와 글쓰기의 관계는 10여 년 이상은 만나온 연인 관계처럼, 만나면 쓱쓱 써 내려가지는 문장들에 내 마음이 편해지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셀프 위안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는 서로이기에, 적나라하게 글로 표현된 나의 생각에 대해 지나친 자아성찰과 자기 검열을 하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내 글의 부족함이 더 잘 보여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 시점에 나는 글쓰기와 절교를 한다. '다시는 안 써!'라고 헤어지는 연인처럼 토라져서 절필 아닌 절필을 선언해보지만, 결국 며칠 못가, 또다시 슬쩍- 글을 읽고, 글쓰기를 보고 싶어 하며, 기웃기웃- 쿡쿡 찔러보는 과정을 거쳐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쓴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쓰고 싶어 하는 마음.


나와 비슷한 마음을 지닌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간에서 이 밤을 끄적이고 있겠지. 모두들 이 밤의 끝을 잡고, 잠들어 버리면 그만일 이 밤이 뭘 그리도 아쉬운 건지. 왜 우리는 모두들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일까.

컴퓨터 앞에 앉아 밤 시간의 타자를 눌러 적는 그대. 그리고 나- 우린 참 고독한 연애를 하고 있구나.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큰 보상이 뒤따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 시간이 좋은 이유는 내 마음에 귀 기울여 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작은 바램 때문일 것이다. 내 이야기를 펼쳐놨을 때, 지나가는 누구라도 들여다봐주고, 읽어주고, 공감해줄 때 느끼게 되는 소소한 희열. 혹은 내 이야기에 스스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혼자만의 자기만족. 그 소소한 맛에 중독되어 오늘도 밤 쇼핑을 포기하고 쓰기를 택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에 머무르는 그대. 그리고 나의 시간은 참 아름답다는 것.

시간 참 잘~ 썼다 싶게 우리 모두에게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라고 쓰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이불 킥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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