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거실 좀 쓰겠습니다 (2편)

시댁 거실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썰

by 워킹맘 놀부며느리

지방에서 성공해보겠다고 서울로 간지 3년만에 갑자기 우리 가족은 태국으로 갔다

다시는 이 지방에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무지의 산물로, 집을 아주 헐값에 팔아넘겼다.

그것도 급매 + 있는 물건 다 가져가세요 수준으로.


집을 팔고, 대출금을 갚고 난 뒤 우리 손에 잡히는 돈은 고작 800만원이었다.

그돈 중 500은 보증금을 내고, 나머지 300은 당장의 생활비로 사용하기로 했다.

36평짜리 집을 급매로 팔았으니 당연히 마이너스였고, 잡히는 돈은 없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전세로 두었어야 하는데

우리는 무지했고, 그 무지를 부모님도 말리지 않으셨다 (직접 경험하고 깨닫길 바랬던 것 치곤 너무 가혹한 결말이었다)


분당으로 올라가기 전 딱 한번 보고

그자리에서 복층 오피스텔 월세를 계약했다.

지금생각해보면 ' 정말 미쳤다 '

네 식구가 복층 오피스텔에서 ㅠㅠㅠㅠㅠ

그렇지만 아이들은 2층집이라며, 좋아라 했다.

쿵쾅쿵쾅 오피스텔에 들어갈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신문지를 깔고, 짜장면을 먹으며 앞으로 펼쳐질 멋진 우리의 미래에 대해 화이팅 구호를 외치던 우리 부부였다. 참 신기하게도 우린괜찮았다.

방 세칸이 없어지고 방이 하나남았지만,

우리집을 버리고 월세살이를 시작했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지방에서 살다가 상경한 기분이 좋았고

아이들은 지하철을 탈 수 있어 행복해 했다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고작 4,5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인데

내 마음엔 이미 다 자라나 쪽방 생활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린 그렇게 분당 오피스텔에서 우당탕탕 다시 삶을 시작했고, 괜찮았다

몇개월 지나지 않아 우린 방두칸짜리 주택으로 월세를 옮겼고

그곳에서도 너무 행복했다. 물론 아픔의 서울생활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며 아이들과 보낼 시간은 적었지만

나는 그게 스스로 자립한 첫번째 도전과도 마찬가지 였기 때문에 감사한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 1년 2년 시간이 지날 수록 돈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우리의 소비는 커져만갔다

부모님은 우리의 생활 소비패턴을 보고 노하셨지만,

나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끄때의 생활에는 후회없다

아끼고, 아껴서 누릴 수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린 당장 1년에 한번 가는 여행도 계획하고 가야하는데

서울에 있는 3년동안 우리는 크루즈여행을 네번이나 가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차도 타고, 좋은것도 많이 먹고 돈도 많이 썼다.

그리고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린 시댁 거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일로 시댁에 들어오게 된 건 아니다.

이제 우리의 거실 동거 스토리 시작 전까지 엄청난 일들이 펼쳐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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