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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의 꿈 : 쉰 앞에서 꿈꾸는 법

삼월의 아홉수

by 저나뮤나

"너는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신나서 대답하던 때가 있었다.


"검사요!" (2025년에도 검사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이요!" (아는 직업이 다섯 개도 안 됐다.)

"기자요!" (기자가 되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때 내가 알던 꿈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그냥 하고 싶은 것을 가볍게 말하면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말하고 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살다 보니 꿈은 결코 가벼운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꿈은 책임이 뒤따르고 성취의 버거운 과정이 뒤따르는 지난한 일이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경쟁력이 있느냐 없느냐 같은 현실적인 질문이 꿈과 경합했다. 어느새 솜사탕 같던 꿈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만 갔고, 질질 끌고 다니던 꿈은 어느샌가 오래된 이불솜처럼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엔 안정적인 게 최선 아닌가 싶어 공무원이 되기는 했다. 뭔가 되기는 됐는데 산뜻하지가 못했고, 뭔가를 이루었다는 생각보다는 타협했다는 사실에 슬픈 마음이 안개처럼 짙게 내려앉았다.


스물이 되기 전, 서른이 되기 전, 마흔이 되기 전, 쉰이 되기 전. 마침표를 찍고 그다음 챕터로 나아가기 바로 앞에서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 잘 가고 있는 건가?" 아직까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망설이다간 그간 그랬듯이 아무 결론도 못 내고 그냥 한 살 더 먹을 것 같다. 그래서 아찔하다.


솜사탕 같던 꿈이 어쩜 이렇게 무거워진 건지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한 것 같다. 꿈의 무게를 느끼는 이유는 그 꿈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느 국면에서 끝내지 못하고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 것들이 단단히 뭉쳐 엄청난 질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공무원을 때려치울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망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짊어지는 게 무겁다고 해서, 그 무게를 내려놓는 것이 꼭 가벼운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반드시 돌아와 답을 내놓으라고 빚을 받지 못한 채권자처럼 내 앞에 드러눕는다.


어떤 형태로든 이번에는 마침표를 찍고 가야겠다. 젊은이 체력도 아니고 젊은이 쌩쌩한 두뇌도 아니고 이제는 달라진 배경에서 다른 종류의 꿈을 꿔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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