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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

아홉수의 아군

by 저나뮤나

교무실 구석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가 앉아 있다.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한숨을 쉬며 아이를 노려본다. 그때 문이 열리고, 부모가 등장한다.


장면은 매번 다르지만 대사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이는 학교에 있었고, 학교 스포츠팀 코치와 벌어진 일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 오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집 밖에서 부모 없이 스포츠를 하려면 서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웨이버, 건강 검진 서류, 사전 동의서 등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병원에서 받은 건강 검진 확인서와 예방접종 기록도 필수다. 번거롭지만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긴다. 성격이 꼼꼼한 편이라 서류 제출만큼은 날짜에 맞춰 철저히 해왔다.


그런데 아이한테서 제출해야 할 서류가 누락돼서 트라이아웃*을 못한다는 문자가 왔다.


* 트라이아웃 : 팀에 합류하기 위한 테스트 세션으로, 통과하면 팀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는 침착했다. 코치가 서류 미비로 트라이아웃을 못한다고 하자, 아이는 첫마디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어요."


이 트라이아웃을 통과해야 아이가 계획한 학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긴장을 할 법도 한순간인데, 아이는 코치에게 간단히 한 문장을 말하고는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서류가 미비라는 코치와 절대로 어떤 서류도 평생 빠뜨린 적 없는 엄마라는 사람을 아는 아이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문자와 전화로 상황을 알렸고, 다른 아이들은 이미 트라이아웃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이는 이 순간에도 코치의 실수가 분명하다며 자기는 괜찮다고 한다.


아이의 이런 강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정말 내가 서류를 안 낸 건 아닐까? 불안과 초조가 밀려왔다. 코트에 갈 수도 없고, 급하게 인터넷으로 학교에 제출한 서류를 찾아봤다.


역시나. 서류는 있었다. 그것도 유효기간이 석 달이나 남은 서류였다. 코치는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지 않고, 작년 발급 서류라는 이유로 아이를 막은 것이었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이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었는데. 옆에 적힌 날짜만 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급히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코치에게 날짜를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코치의 실수였다. 아이는 결국 코트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미 트라이아웃 세션이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저녁에 집에서 만난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는 다 알았어.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내가 아무리 코치한테 말해도 안 믿더라고. 결국엔 내가 맞았잖아. 엄마가 하는 일에서 뭐가 틀리면 그건 엄마일 수가 없는 거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엄마가 제일 정확하거든. 아. 내가 그렇게 코치한테 말했는데,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이런 무조건적인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니.


그런 네가 있어서 아홉수 같은 언덕도 잘 넘어간다. 혼자는 버거울 길이지만, 네가 함께라면 다를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널 무조건 믿으며 네가 가야 하는 인생의 언덕에서 널 돕고 싶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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