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의 아홉수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처럼, 껌도 씹던 사람이 씹는 건가 보다.
평소에 껌을 즐겨 씹는 편도 아닌데 하필 출근길에 껌 한 톨을 씹다가 입 안에 피가 그득해졌다. 껌만 씹어야 했는데, 내 살을 씹은 것이다. 무슨 껌을 그렇게 대차게 씹었나 싶다. 입술 안쪽에 스테이플러로 찍은 듯한 구멍이 생겼다.
눈물이 찔끔 나고, 악! 소리도 났지만,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출근길에 껌을 씹다가 실수로 입술 안쪽을 씹었는데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서 당황했지만,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는 이야기다.
전에도 그랬던가 생각해 보니, 전에도 실수로 입술 안쪽을 씹은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밥 먹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던 중이었다.
적어도 혼자서 껌 씹다가 그런 일은 없었단 말이다.
그러고 찬찬히 입술 안쪽을 살펴보니, 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탄력을 잃어가는 건 바깥 피부만이 아니었다. 외적인 변화는 눈에 보이지만, 사실 속에서도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거다. 보이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장기나 두뇌, 혈관, 뼈도 결국 내 바깥 피부와 같은 차원에 살고 있다. 바깥을 힘주어 다듬고 있을 때 속은 자연스럽게 세월과 중력에 순응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러니 내면을 가꾸고 어쩌고 하는 뻔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얘기가 필요한 맥락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껌을 씹다가 제대로 입술을 씹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순간이 온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이 지점까지 왔다는 거다.
바라기는 뭘 먹다가 입술을 씹는 일은 아홉수에나 일어나는 일이면 좋겠다. 하지만 내 바람과 상관없이 이 일은 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이를 먹으면서 늘어나는 건 껌이 아니라 내 피부이기 때문이다. 늘어진 속살을 그러모아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당분간 껌은 못씹을 것 같다. 아침에는 늘 하던대로 커피나 마셔야겠다. 껌은 정신이 바짝 차려진 오후에나 씹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