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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왜 지금 모금 윤리인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오래된 기술

by 짱고아빠

신뢰를 잇는 기술로서의 윤리


모금은 결국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돈과 마음을 우리에게 건넨다는 건 단순한 선의의 표현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신뢰의 일부를 함께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금의 본질은 얼마를 모았는가보다 어떻게 신뢰를 쌓고 유지하는가에 있습니다. 신뢰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지만 모금의 모든 성과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기반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신뢰를 지켜내는 굉장히 큰 부분이 윤리입니다.

예전에는 이 신뢰를 유지하는 일이 지금보다 단순했어요. 정보가 느리게 움직이던 시절에는 단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통로가 한정돼 있었고 사람들도 단순히 좋은 일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만으로 쉽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문장, 한 번의 실수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대입니다. 단체의 과거 기록은 검색 몇 번으로 확인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이 온라인에 남습니다. 신뢰를 얻는 데 쌓아온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것을 잃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면 충분하죠.


법과 제도가 우리가 넘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울타리라면 윤리는 그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입니다. 법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주지만 윤리는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윤리는 속도를 늦추는 게 아니라 길을 잃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모금 현장에서는 효율과 윤리가 충돌하는 순간이 꽤 자주 있습니다. 더 많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쓰고 싶은 유혹, 빠른 결과를 위해 검토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마음 등 다양한 곳에서의 유혹이 우리를 위협하죠. 이때 윤리는 방향을 알려줍니다. 눈앞의 성과에 집중할수록 우리는 쉽게 방향을 잃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완벽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솔직하고, 일관되고, 정직한 기관이길 바랍니다.



디지털 시대, 법을 넘어 윤리로

디지털 환경은 모금의 기회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단 몇 초 만에 수천 명이 한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메시지를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커졌습니다. 수혜자의 사진을 SNS에 올릴 때, 그 사람이 진심으로 동의했는지, 그 이미지가 이후 어떤 맥락으로 사용될거라고 충분히 설명했는지, 그 결과가 몇 년 뒤에도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를 우리는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한 번 올린 콘텐츠를 완전히 삭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취사선택한 어떤 장면이 여전히 온라인 어딘가에 남아 훗날 당사자에게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모금 효과가 미래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도록 그 균형을 잡는 것이 윤리이기도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의 강화도 모금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법적으로 요구되는 동의 절차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지만 법적 최소 기준만 충족하면 윤리적으로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후원자나 수혜자의 개인정보를 다룰 때는 법적 요구사항을 넘어서서 ‘과연 이 정보가 정말 필요한가’, ‘이 정보를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계속 묻고 답해야 합니다. 특히 참여형 캠페인에서 사람들의 참여 이력을 데이터베이스화할 때는 개인정보보호법 준수를 기반으로 윤리적 자율성을 가능한 한 보수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AI와 데이터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책임도 커졌습니다. 윤리는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보다 먼저 서 있어야 합니다. ‘수집 가능한 정보’와 ‘수집해도 되는 정보’는 다릅니다. 모금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고 그 흔적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단체의 신뢰로 돌아옵니다.



모금윤리를 지킨다는 것

모금 윤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깨끗하게 운영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잊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사람을 해치는 방식은 절대 선택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존엄을 훼손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신뢰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 우리는 결과과 관계없이 이미 실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런 잘못된 선택의 흔적이 더 오래 남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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