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과 순환, 조직이 흔들리지 않게 설계하는 법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전문가’라고 부르지만, 그 기준은 제각각이에요. 누군가는 오랜 경력을, 또 누군가는 자격증이나 외부 강의 경험을 근거로 삼죠.
OECD는 전문성(Competence)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복잡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지식(knowledge), 기술(skill), 태도(attitude)을 통합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능력’. 국내 인적지원개발(HRD) 용어사전은 전문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특정 분야에서 반복된 경험을 통해 숙련된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그것을 실천 가능한 수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상태’
즉 전문성이란 특정 분야의 정보를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실행하고, 협업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단순히 그 업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업을 ‘작동시키며 그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하죠. 그렇다면 우리는 조직 안에서 이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잘 지켜가고 있을까요?
순환보직은 말 그대로 일정한 주기마다 부서를 옮기며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사회복지기관에서 조직 전체를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로 운영되고 있죠. 장점은 분명해요. 다양한 부서의 흐름을 경험하면서 조직 전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특정 분야에만 몰리는 업무 편중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부서를 맡을 때마다 새로운 시선으로 일에 접근할 수 있어서 조직 내부의 정체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순환이 전략 없이 관행처럼 반복되면 문제는 금세 드러나요. 업무가 익숙해질 때쯤 이동이 결정되고 이미 관계가 안정될 무렵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죠. 성과가 나올 시점에 자리를 옮기게 되면 개인의 성장 흐름은 끊기고 조직 역시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합니다.
업에 관한 전문성에도 물음표가 생기게 되죠. 결국 다양한 경험이라는 말이 연속성의 부재로 바뀌는 거예요. 더군다나 간혹 이 이동이 외부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왜 나야?”라는 의문이 생기고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구성원의 동기와 신뢰는 약해집니다.
반대로 고정보직은 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오랜 시간 같은 영역에 머물며 노하우를 축적하고 현장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며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죠. 특히 사회복지나 국제개발 분야처럼 맥락 이해가 중요한 조직에서는 이 시간의 깊이가 큰 자산이 됩니다. 한 사람의 전문성이 곧 조직의 신뢰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고정보직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오랜 근속이 익숙함을 낳고 익숙함이 변화를 가로막을 때가 있죠. “늘 이렇게 해왔으니까”라는 말은 안전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닫기도 해요. 팀 간 벽이 높아지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결국 고정보직은 깊이는 있지만 유연성이 떨어지는 구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언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이동이 필요한가를 명확히 하는 거예요. 조직의 성장 단계와 구성원의 경력 주기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직이 이제 막 성장기에 있다면 다양한 경험을 통한 순환보직이 도움이 돼요. 구성원들이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반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조직이라면 각 영역에서 전문성을 심화할 수 있도록 장기 배치가 필요합니다. 깊이 있는 전문가가 있어야 조직의 정체성과 일의 품질이 유지되니까요.
결국 순환보직과 고정보직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성장의 단계에 따라 맞물려 돌아가는 두 개의 톱니바퀴예요. 중요한 건 누가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왜 움직이느냐예요.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비영리 기관은 순환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는 조금 더 이 부분이 전략적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에서 언급했듯 인사가 단순히 “이번엔 이분이 이동할 차례예요”로 결정되는 순간 조직은 전문성을 잃습니다. 하지만 이동의 목적이 명확하고 성장의 방향이 설계되어 있다면, 순환은 훌륭한 배움의 과정이 될 수 있어요.
1) 이동의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기 : “왜 지금, 왜 이 사람인가?”가 명확해야 해요. 단순히 ‘다양한 경험’이 아니라 ‘이 경험이 당신의 장기 성장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2) 커리어와의 연속성 보장하기 : 이전 부서에서 쌓은 전문성이 다음 부서에서도 확장될 수 있어야 해요. 이동이 리셋이 아니라 성장의 곡선이 되게 설계해야 합니다.
3) 시간의 안정성 확보하기 : 핵심 직무는 최소 3년 이상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해요. 전문성은 반복과 시간에서 자라나기 때문이에요.
HR전문가 케빈 오스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핵심 인재는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어야 몰입하고 성장한다. 내부 이동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과 기회의 프레임 안에서 설계돼야 한다.”
저는 이 문장을 인사와 조직문화의 핵심으로 봐요. 이동이 누군가의 성장 여정 안에서 선택된 경험으로 느껴질 때, 그 사람은 더 깊이 몰입하고 조직은 신뢰를 얻게 됩니다.
전문성을 잇는 마지막 관문은 ‘인수인계’예요. 이건 단순히 문서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지식 자산을 다음 세대로 옮기는 과정이에요. 그 사람의 노하우와 관계의 맥락, 실패의 흔적, 문제 해결의 기준이 함께 전해져야 하죠. 그래서 인수인계는 문서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아요. 사람 · 문서 · 리추얼(ritual)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돼요.
이때 필요한 다섯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핵심 연락망 : 주요 파트너·후원자·협력기관 리스트와 관계의 맥락.
2) 프로세스 지도 : 월별 루틴, 업무 흐름, 주의 포인트.
3) 결정 기록 : 중요한 의사결정의 배경과 이유, 실패·성공의 근거.
4) 템플릿과 샘플 : 제안서, 예산표, 보고서 등 실무 표준 예시.
5) 학습 노트 : 유용한 자료, 데이터, 외부 참고 링크.
이 다섯 가지가 바로 한 사람의 지식 자산이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서도 중요하지만 후임자가 회의에 한 번 동석하고, 외부 미팅에 함께 나가보고, 마지막으로 Q&A를 나누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문서로는 담기지 않는 일의 감각과 관계의 온도가 자연스럽게 전해지거든요.
비영리조직은 결국 ‘사람이 자산인 조직’입니다. 전문성은 그 사람 안에 쌓이는 시간의 결과물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면 그 조직의 철학이 드러나죠. 저는 우리가 이런 조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성장 경로를 존중하고 한 사람의 경험이 팀 전체의 자산으로 남는 조직. 그래야 한 세대의 시간이 다음 세대의 힘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순환보직 (Rotational Assignment)]
• 핵심 목적: 조직 이해도 확장, 다양성 확보
• 장점: 다양한 경험, 부서 간 협업 강화, 리더십 준비
• 단점: 전문성 누적 어려움, 적응 스트레스, 피로도 증가
• 적합한 환경: 대규모 조직, 리더 육성 프로그램, 신입·경력 초반
• 운영 팁: 경력 설계 기반 이동, 순환 대상·기간 명확화
[고정보직 (Fixed Position)]
• 핵심 목적: 전문성 심화, 지속가능한 성과
• 장점: 깊이 있는 전문역량 축적, 업무 연속성 강화
• 단점: 변화 대응 유연성 부족, 사일로 고착 위험
• 적합한 환경: 전문 직무 중심 조직, 장기 사업·프로젝트 환경
• 운영 팁: 중장기 목표 연계, 내부 전문가 제도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