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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신뢰를 지키는 네 가지 원칙

신뢰를 잇는 구조, 윤리가 만드는 조직의 힘

by 짱고아빠

잊을만 하면 한번씩 모금기관의 이런저런 이슈가 뉴스거리가 되곤 합니다. 이럴때 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참 곤혹스럽습니다. 저희는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한번 깨져버린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캠페인을 기획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과정은 투명한가?

사람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가?

누구에게도 불공정하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은 실무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투명성 : 신뢰의 시작은 ‘보이는 일’에서

후원자가 우리의 활동을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는 것입니다. 투명성이란 단순히 숫자를 공개하는 일이 아니라 후원자가 내가 참여한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획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솔직하게 설명할 때 더 큰 신뢰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비영리 기관의 투명도가 단순히 보고서나 수치 공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캠페인의 취지, 예산의 흐름, 주요 의사결정 과정까지 가능한 한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않은 결정이긴 합니다. 하지만 “공개해도 되는가?”보다 “공개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를 먼저 질문하고 가능하다면 공개하는 것이 후원자들에게는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Do: 활동과 예산의 흐름을 시각화해 공유하고 계획의 변경 사유를 미리 안내하기

Don’t: 불리한 정보나 실패를 감추거나 후원자 질의에 답변을 미루기



존엄성 : 도움을 받는 사람도 ‘관계의 주체’로

존엄성은 모든 윤리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진과 영상은 강력한 감정을 일으키는 수단인 만큼 표현의 경계가 늘 섬세해야 합니다.


SNS에 올릴 사진 한 장을 고를 때도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이 사진이 공개되기를 원할까?” 때로는 비극을 강조한 이미지가 일시적으로 후원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상자의 삶을 한 단면으로만 고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런식의 접근은 어떨까요? 모금 콘텐츠의 주인공을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바꾸어 보는 거죠. ‘불쌍함’을 보여주는 대신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겁니다.


Do: 촬영 전 당사자에게 용도·기간·매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언제든 철회할 수 있음을 안내하기

Don’t: 감정 자극을 위해 비참함이나 상처를 과도하게 노출하기



공정성 :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캠페인에는 후원자와 수혜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협력 단체, 지역 사회, 그리고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파트너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일부 현장에서는 그 중 일부의 목소리만 캠페인에 반영되어 참여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공정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형 후원자에게만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내부 직원의 친분으로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할 일입니다. 이 공정함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의사결정 구조가 명확하고 그 기준이 누구에게나 설명 가능할 때 후원자와 내부 모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Do: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동일한 정보 접근 기회를 보장하고 주요 결정 과정을 회의록으로 공유하기

Don’t: 개인적 친분이나 단기 성과를 이유로 특정 집단만 우대하기



책임감 : 끝까지 함께 가는 마음

책임은 캠페인이 끝난 뒤에도 남는 어떤 것입니다. 모금액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거나 중간에 계획이 변경되었다면 그 이유를 후원자들에게 숨기지 않고 설명해야 합니다. 또 향후의 진행방향에 대해 솔직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때로는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을 솔직하게 공유할 때 후원자는 단체를 믿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합니다.


책임은 변명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일입니다.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 진짜 책임입니다.


Do: 사업 종료 후 결과 공유·대안 제시, 문의 대응 프로세스 명확히 하기

Don’t: 예상치 못한 문제 발생 시 침묵하거나 책임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기



비영리조직의 윤리 4원칙 요약


1) 투명성 — 보이는 구조가 신뢰를 만든다

재정과 활동을 열린 구조로 관리하고 후원자가 ‘내가 참여한 일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실천: 과정·예산·변경 사유 공개

지양: 실패 숨기기, 질의 회피


2) 존엄성 — 사람을 ‘사례’가 아닌 ‘주체’로

대상자를 비극의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고, 변화의 동반자로 대우하는 태도.

실천: 촬영·노출 목적과 기간 설명, 철회 가능 안내

지양: 감정 자극을 위한 과도한 노출


3) 공정성 — 모두가 형평성을 느끼는 과정

특정 집단만 이익을 얻지 않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

실천: 동일한 정보 접근 보장, 회의록 공유

지양: 친분 기반 선정, 특정 후원자만 우대


4) 책임감 — 끝까지 함께 가는 태도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솔직하게 공유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자세.

실천: 결과 보고, 대안 제시, 사후 문의 대응

지양: 문제 발생 시 침묵하거나 책임 회피



이 네 가지 원칙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며 작동합니다. 투명성이 없으면 공정성을 증명할 수 없고 존엄성을 잃으면 책임감도 의미를 잃습니다. 완벽히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있더라도 이 네 가지를 기준 삼아 고민하고 선택하는 태도 자체가 윤리의 출발입니다.


윤리를 지키는 일은 누가 감시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신뢰받는 조직이 되기 위해 세우는 약속입니다. 윤리는 조직의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조직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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