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만드는 기술
모금이 잘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캠페인 예산의 부족을 탓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부족한 건 돈이 아니라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감정보다 명분, 그리고 그 명분을 지탱하는 당위성에 반응합니다.
감정은 순간을 흔들지만 당위성은 방향을 정하게 하죠. “왜 지금 이 일을 해야 하죠?”, “왜 당신(혹은 기관)이 이 일에 필요한 사람이죠?”라는 질문에 선명하게 답할 수 있을 때 후원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반대로 이 질문이 모호하면 어떤 콘텐츠도 오래가지 못해요. 그래서 모든 캠페인의 시작은 예산이 아니라 명분 그리고 당위성의 구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건 옳다’는 확신이 들 때 움직입니다. 감정은 참여의 불씨를 붙이고 당위성은 그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쌓아요.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일보다 왜 함께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을 때 마음이 머뭅니다. 그래서 모금가는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오래 머물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이에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관점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참여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운동화를 사주세요”보다 “아이들이 미끄러져 다칠 걱정 없이 뛸 수 있게 해주세요”가 훨씬 설득력 있게 마음을 움직이죠. 전자는 물건의 언어고 후자는 가능성의 언어여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사달라’는 요청보다 ‘무엇을 가능하게 한다’는 제안에 더 마음을 엽니다. 이 제안이 바로 당위성 즉 명분입니다.
첫째, 구체성. “모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는 아름답지만 우리가 상상하기에 좀 먼 개념입니다. “우리 동네 방과후 교실의 20명을 3개월 동안 함께 공부하게 하겠다”처럼 구체적일수록 참여자는 행동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연결성. 내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가 담겨야 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10년간 지켜본 돌봄의 공백을 메웁니다.”라는 문장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증명하죠.
셋째, 시의성. 지금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올봄에 전학 온 아이들이 학기를 놓치지 않도록” 같은 시간의 닻이 있을 때 사람은 행동합니다.
명분은 멋진 슬로건보다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아래 다섯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1) 이건 지금 해야 하는 일인가요? → 시의성과 계기가 명확한가요?
2) 이건 내가 해야 맞나요? → 나의 경험·전문성·관계망이 설득의 근거가 되나요?
3) 이건 누구를 위한 일인가요?→ 대상이 한 사람처럼 구체적으로 보이나요?
4)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미실행의 결과를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나요?
5) 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가요?→ 참여자의 역할이 선명히 드러나 있나요?
“지금 / 내가 / 누구를 위해 / 무엇을 가능하게 한다.”
이 네 가지가 모두 들어가면 좋은 명분이에요.
명분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현장에서 세 줄 구조로 정리하곤 해요.
1) 진입 문장 : 감정의 창을 여는 문장 → “오늘도 혼자 남는 아이가 있어요.”
2) 근거 한 줄 : 신뢰의 발판이 되는 사실 → “우리 동네에는 오후 2~4시, 돌봄 공백 아동이 20명입니다.”
3) 행동 제안 : 즉시 참여할 수 있는 문장 → “당신의 가벼운 점심 한 끼로 한 아이의 하루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 세 줄만 명확해도 어디에 올려도 흔들리지 않아요. SNS 카드로도, 랜딩 페이지 문장으로도 그대로 쓸 수 있죠.
좋은 명분은 언어에서 시작돼요. 무심코 쓰는 단어들이 관계의 온도를 결정하니까요.
<피해야 할 표현 → 바꿔 쓰기 예시>
불쌍한 아이들 → 가능성을 이어가는 아이들
작은 정성 부탁드립니다 → 함께할 한 걸음을 남겨주세요
도와주세요 → 함께 만들어주세요
명분은 존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당신 덕분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로 문장을 바꾸면 관계의 결이 달라집니다.
세대마다 반응하는 포인트가 달라요. 같은 명분이라도 다른 언어로 번역해야 마음에 닿습니다.
<세대별 명분 전략 (요약)>
MZ세대(20~30대)
핵심 가치: 투명성, 확인 가능한 변화, 실시간 피드백
잘 반응하는 명분: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변화”
메시지 예: “매달 3만원으로 아이의 교육비 전액을 지원하고, 앱으로 성장 과정을 확인하세요.”
피해야 할 표현: 추상적 메시지, 감정 호소만 있는 문장
X세대(40~50대)
핵심 가치: 전문성, 효율성, 책임
잘 반응하는 명분: 검증된 시스템 기반의 도움
메시지 예: “15년간 검증된 OO의 지역개발 시스템으로 한 마을 전체의 자립을 도와요.”
피해야 할 표현: 트렌드성 메시지, 가벼운 감정 표현
베이비부머(60대 이상)
핵심 가치: 신뢰, 안정감, 가족적 관계
잘 반응하는 명분: 오랜 전통과 따뜻한 관계
메시지 예: “70년 역사의 OO과 함께 아이 한 명의 평생을 책임지는 인연을 만들어보세요.”
피해야 할 표현: 지나치게 디지털 중심 메시지
이제 당신의 캠페인 명분을 직접 작성해 보세요.
1) 한 줄 명분
2) 지금 참여해야 할 이유
3) 우리 기관이 해야 하는 이유
4) 하지 않으면 생길 변화
5) 참여자가 오늘 할 수 있는 행동
6) 근거 한 줄 (숫자·사실 등)
7) 주요 타겟 세대와 맞는 키워드
“지금/내가/누구를 위해/무엇을 가능하게 한다” 문장이 완성되어 있나요?
감정적 호소 대신 공감 가능한 근거를 제시했나요?
참여자의 역할이 선명하게 드러나나요?
세대별 메시지 톤이 구분되어 있나요?
투명성·존엄성·공정성·책임감의 윤리 기준을 충족했나요?
명분이나 필요성은 캠페인의 서두에만 필요한 문장이 아닙니다. 기획서의 제목, 카드뉴스의 첫 줄, 후원자에게 보내는 감사 메시지까지. 모든 문장의 기준점이 되어야 합니다. 명분이 명확할수록 팀은 한 방향을 보고 후원자는 그 길을 함께 걸어요.
다음 절에서는 이렇게 세운 명분을 실제로 구조화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감정에서 구조로, 마음에서 설계로 옮기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