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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Aug 08. 2018

종착역 : 지금 행복한 아이가!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안녕하세요?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연재하던 ‘여행이 교육이 되는 순간’ 매거진의 마지막회입니다. 1화 ‘행복행 기차 : 여행이 교육이 되는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게 5월이었는데 벌써 종착역에 닿았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지난 글에서 여행은 거의 끝이 났습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 겪을 수 있는 상황과 몇 가지 여행 요령들을 나름대로 소개해드렸는데요. 아쉽게도 이제 마무리해야 할 순간입니다. 그런데 막상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왜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는 끝내기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하필 여행일까요? 다른 활동도 많고 요즘처럼 더운 날 집에 있으면 편한데 왜 굳이 이렇게 아이 손 잡고 여행을 떠나라고 외치는 걸까요? 1화에서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여행이 일상의 그 어떤 활동보다 큰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그 행복감은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요? 아래의 글은 오래전 써 둔 글입니다. 묵혀둔 글을 다시 내보이는 이유는 앞에서 질문한 모든 것들의 대답이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솔직히 여행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아니 우리 모두의 행복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부끄럽게 내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하다


휴일 날 아침이었습니다. 잠이 덜 깬 채 바닥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다녔습니다. ‘아~ 이런 게 휴일의 행복인가?’하고 게으름을 만끽하다 전에 빌려둔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했습니다. 호사카 다카시의 <아이의 뇌 부모가 결정한다>라는 책이었지요. 읽다 보니 꽤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의 눈꺼풀을 바로 봉합해버리면 얼마 후 원래대로 복원해도 그 고양이는 평생 앞을 보지 못한다는 실험이었지요. 그 순간 잠이 덜 깬 눈꺼풀이 번쩍하고 떠지더군요. 눈을 감는 게 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인 허블과 위젤이 증명한 유명한 실험입니다. 책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니 그 고양이는 ‘앞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비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어떤 기능을 획득하려면 적절한 기간(임계기) 내에 적절한 자극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1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적절한 자극 


놀랍죠? 허블과 위젤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앞을 보는 능력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야 형성됩니다. 자극은 시각을 담당하는 뇌에 프로그래밍됩니다. 이것이 앞을 보는 능력으로 발전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 과정도 적절한 때에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하면 평생 그 능력을 상실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받아야 제대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온갖 부적절한 자극에 시달리면서 살아갑니다.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피곤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바쁘게 사는 아이도 있습니다. 외로워서 자극적인 매체나 게임에 목매는 아이들도 있지요. 재미나 즐거움 같은 행복한 자극이 아니라 피곤함이나 외로움, 분노 같은 스트레스성 자극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스트레스성 자극의 원인은 대개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집에서는 부모와 형제자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또래 친구들이 원인이 되곤 하지요.     



#2 아이들의 스트레스


인터넷에서 찾은 한 설문조사(초등학교 6학년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 자료에 따르면 아이들 가운데 46%가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부모의 잔소리와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뒤를 이어 35%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다음이 ‘학교, 학원에서 선생님과의 관계, 질서, 규율 지키기’ (10%)였고, ‘왕따, 은따, 친구 만들기 등 교우 관계’ (7%) 순이었습니다. 사실 누구보다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내 아이니까,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잘 되길 바라니까 잔소리도 하고 꾸중도 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의도와는 달리 부모의 잔소리와 꾸중 그리고 내 아이를 잘 되게 만들어 줄 거라 여겼던 공부가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성 자극을 받은 아이들은 도피처를 찾아 나섭니다. 이 설문조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라는 질문에 42.4%의 아이들은 게임을 하거나 TV를 본다고 답했습니다. 그다음 19.7%는 운동을 한다고 했고, 16.7%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을 하거나 TV만 보고 있으면 부모 입장에선 속이 터집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대는 것도 속 터지는 건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다시 또 잔소리와 꾸중이 이어지고,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또 쌓입니다. 



#3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가요?    


설문조사의 마지막 질문은 ‘여러분은 행복한가요?’입니다. 이 질문에는 38%의 아이들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다음 28%는 비교적 행복하다, 25%는 매우 행복하다고 답했지요. 행복하지 않은 편이라고 답한 아이는 6%, 불행하다는 아이는 3%였습니다. 아이들 가운데 절반은 행복하다고 답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거나 불행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이 38%나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행복한지 아니면 불행한지 아는 아이들은 최소한 ‘행복이 무엇인지’는 아는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모르겠다는 아이들은 ‘행복이 대체 뭔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지요.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행복이란 무엇인지 모르고 큰다는 건 꽤 심각한 일입니다. 이건 마치 허블과 위젤의 고양이가 자극을 받지 못해 앞을 못 보게 된 경우와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 자극을 제때 받지 못해서 행복이 뭔지도 모른 채 자라고 있는 겁니다. 행복이 뭔지 알아야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할 수 있겠죠?     



#4 아이들이 행복을 모르는 이유


상당수 아이들이 행복이 뭔지도 모른 채 자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가정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행복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는 마음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만족스럽고 즐거운 상황이거나 희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은 행복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가정 상황이 불안하고 늘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라면 행복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희망마저 잃어버리면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부모는 날마다 다투고 돈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말만 들리는 집에서는 행복보다는 생존이 더 급합니다. 똑같은 처지라도 부모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항상 희망을 외치는 집에서는 나름의 행복이 피어납니다.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한 아이일수록 행복해지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부모부터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행복은 곧 아이의 행복으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지금 행복한 아이보다 나중에 성공한 아이를 더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한 것도 좋지만 나중에 더 행복해지려면 지금 이 순간 참고 견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건 대체로 행복의 기준을 돈이나 성공에 두는데서 비롯됩니다. 지금은 부모를 원망해도 나중에 성공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믿기도 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내 아이가 돈을 벌거나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건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아니라면? 지금도 행복하지 않고 나중에도 행복하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5 행복은 얻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지금의 행복과 나중의 행복 가운데 부모의 노력으로 확실히 결정지을 수 있는 건 지금의 행복입니다.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혀 미래의 행복이라는 복권에 응모하지 마세요. 미래의 행복을 개척하는 건 내 아이의 몫입니다. 막연한 믿음으로 성공하길 기대하는 것보다 지금 내 아이가 행복한지 관심을 두는 게 더 현명합니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것입니다. 돈이나 성공 같은 객관적 가치를 얻는다고 해서 행복해지진 않습니다. 이건 TV에 나오는 드라마만 열심히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얻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겁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결정됩니다. 현실은 그저 거들뿐이지요. 좀 더 나은 조건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잊지 마세요. 행복은 느끼는 겁니다. 내 아이에게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6 지금의 행복이 아이를 키운다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와 경향신문이 함께 벌이고 있는 캠페인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가운데 첫 번째 약속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서 배낭여행을 하던 중 지하철 광고판을 보고 이 약속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미래가 사실은 현재로부터 출발한다는 걸 잊고 살아갑니다. 현재, 현재, 현재 이렇게 반복된 현재가 결국은 미래가 되는데 말이지요. 지금 행복한 아이에게 행복한 미래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하다 보면 ‘이것 또한 추측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측에 머물지 않기 위해선 뚜렷한 근거가 필요하겠지요. 앞에서 소개한 호사카 다카시의 책 <아이의 뇌 부모가 결정한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행복이나 즐거움을 느끼면 뇌 속에서 아난다미드라는 물질이 분비된다. 아난다미드는 행복을 느끼는 물질로 유명한 뇌 속의 모르핀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아난다미드가 분비되면 뇌의 혈류가 왕성해지면서 기억력과 정서가 발달한다. 반대로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분노나 체벌은 뇌 기능의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쳐 어른이 되었을 때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앓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지금의 행복이 기억력과 정서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반대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와 꾸중은 스트레스를 낳고 오히려 아이들의 뇌 기능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잔소리와 꾸중을 일절 금하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불행하다고 느낄 만큼 반복적으로 계속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지요. 잔소리와 꾸중은 궁극적으로 내 아이에 대한 애정 표현입니다. 이제 그 애정 표현을 좀 더 세련되게 해봅시다. 아이의 잘못에 집중하기보다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아이도 그 마음을 알아줄 겁니다.   



#7 행복은 근육과 같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권해효가 나와 강연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가 사는 ‘삼각산 재미난 마을’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야기했던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는 “행복은 근육과 같아서 행복의 근육을 키워야 하고, 그 근육을 자주 써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멋진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아무리 좋은 닭 가슴살과 아령을 갖다 놓는다 해도 그 근육을 반복해서 날마다 쓰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이제 부모도 아이도 행복의 근육을 키워봅시다. 어떠한 불행도 물리칠 수 있는 그 행복의 근육을 위해 날마다 행복을 연습하고 틈만 나면 행복해지세요! 




작가의 책

http://aladin.kr/p/xf1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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