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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존재하는 것들 (1)

by 서효봉 Mar 30. 2025



       

  배고프다. 상교는 기사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식당 사장이 물병과 컵을 가져다줬다.

  “돼지불백이요.”

  “일찍 왔네잉?”

  “배고파서, 일찍 먹고 가려고요.”

  “김 씨는?”

  “그 양반, 말도 꺼내지 마요.”

  “어째, 싸웠당가?”

  “형님이라고 대접해 줬더니, 내가 지 똘마니라고, 온 동네 떠들고 다녀요.”

  “아따, 유치해라잉.”

  “내 말이요.”

  “학교 댕기는 아그들도 아니고.”

  “밥이나 줘요. 배고파 죽겠어.”

  역시 기사식당은 스피드다. 뷔페식 기사식당도 많지만, 상교에겐 시간이 중요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어떻게든 빨리 먹고,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여긴 합격이다. 아는 얼굴들이 많아서 가끔 귀찮긴 해도, 맛과 속도는 끝내준다. 주문하면 바로다. 돼지불백과 쌈 채소, 밑반찬 그리고 밥 한 공기가 앞에 놓였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숟가락을 들고 화면을 힐끔 보는데 의뢰인이 원하는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두세 숟가락 먹은 후 다시 힐끔 보니 멋진 전원주택이 소개되고 있었다. 식당 사장님이 파리채를 들고 곁에 와 말했다.

  “집 좋다잉. 언제 저런 데 한번 살아볼꼬.”

  “에이, 돈 잘 벌잖아요? 이 정도 식당씩이나 하는데.”

  “이거? 잘 벌기는. 개코도 남는 거 읍어. 골병만 들고 집주인만 노났제.”

  “임대료 비싸요?”

  “그거 번다고 허리가 휜다니까네.”

  불고기와 마늘을 상추에 싸서 입 안에 넣었다. 우물거리며 다시 화면을 보니 전원주택이 오억이라고 했다. 오억이 싸다고 난리다. 오억이라. 가만 보자. 택시비를 오천 원씩 받아서 오억 벌려면, 그러니까 손님을, 손님을, 손님을, 십만 명쯤 태우면 되겠네. 그래, 십만 명. 에라이, 전원주택 같은. 허리가 휘다 못해 접혀도 안 될 것 같다. 돼지불백을 싹쓸이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니 손님 세 명이 들어와 창가 쪽에 자리 잡았다. 물 한 컵 마시고, 숨 돌리니 또 문이 열리며 손님 다섯 명이 우르르 들어와 앉았다. 사람 밀려드는 시간이 됐나 보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판기에서 공짜 믹스커피 한 잔을 뽑았다. 갓 나온 따끈한 커피를 들고 식당 문 앞에 늘어선 의자에 앉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 좋았다. 

  갑자기 길 건너편에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났다. 휴대폰 가게 오픈 행사를 하는 모양이다. 스파이더맨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룰렛판 같은 걸 설치 했다. 건너편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픈 행사치곤 너무 썰렁해 보였다. 그나마 지나가는 사람들도 관심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상교는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이겠냐며 혀를 차다 스파이더맨과 눈이 마주쳤다. 스파이더맨은 횡단보도를 건너 상교에게 달려왔다. 전단지를 내밀었다.

  “고객님, 혹시 시간 되시면 저희 오픈 행사에 한 번 참여해 보시겠어요?”

  “시간 없어요.”

  “잠깐이면 되는데, 상품도 있어요. 저기 룰렛판 돌리시면 꽝 없이 무조건 선물 드립니다. 무조건.”

  상교는 귀찮았지만 무조건 선물을 준다는 말에 길을 건넜다. 춤을 추고 있던 치어리더 복장의 여자들이 다가와 룰렛판을 내밀었다. 룰렛판 가운데에는 성지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촘촘하게 구역을 나눠 A부터 Z까지 알파벳이 적혀있었다. 바늘이 가리키는 알파벳에 해당하는 선물을 주는가 보다. 상교는 힘차게 돌렸다. 룰렛판은 돌고 또 돌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돌고 돌았다. 이거 언제 멈추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천천히 멈췄다. 당첨된 알파벳은 ‘S’였다. 첫 참가자인 상교를 마중물 삼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스파이더맨은 마이크를 들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와우! 축하합니다. 첫 선물부터 대박이네요!”

  “대박이요?”

  대박이라는 말에 상교는 한껏 들떴다. 축하 음악이 나오고 스파이더맨이 상교에게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봤다. 그 안에는 하얀색 티켓이 두 장 들어 있었다. 꺼내보니 ‘세븐틴 서울 콘서트 초대권’이었다.    



          

  지수는 상교가 운전하는 택시를 탈 때마다 좋아했다. 택시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특히 엄마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조수석에서 바깥바람을 씌며 감격하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교가 바빠지면서 택시를 타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3학년 때 지수가 택시에서 내려 학교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매일 택시 타냐며 궁금해했다.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지수네 집이 부자라고 단정 지었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일은 4학년 때 있었다. 그날도 상교는 새벽에 출근했다. 지수는 학교에 갔다. 엄마는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앞으로 왔다. 지수를 태워 학원에 데려다줬다. 평소처럼 학원을 마치고, 엄마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지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TV를 켜고 세븐틴이 나오는 음악방송을 보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수는 엄마인 줄 알고 냅다 받았다. 경찰 아저씨였다. 아빠 안 계시냐는 말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지수는 TV를 껐다. 경찰 아저씨에게 물었다.

  “뭐라고요?”

  “어, 혹시 어른 안 계시니?”

  “엄마가 어떻게 됐다고요?”

  “교통사고를 당하셨어.”

  “엄마 괜찮아요? 어딨어요? 우리 엄마.”

  “그게, 어, 아빠는?”

  “말도 안 돼요. 거짓말이죠? 네? 장난치는 거죠? 네?”

  경찰 아저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수는 머릿속에 지진이 나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가슴까지 내려와 뜨거워졌다. 뜨거운 게 다시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눈이 시큰해졌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경찰 아저씨는 계속 아빠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지수는 전화를 끊었다. 울면서 상교에게 전화했다. 신호만 가고 받지 않았다. 열세 번을 전화한 끝에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아빠!”

  “응, 지수야, 왜?”

  “아빠, 엄마가.”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엄마가 사고 났대. 빨리 와. 빨리.”

  “뭐? 지수야, 크게 말해 봐.”

  “엄마가 사고 났다고오! 나 무서워.”

  그러고 나서는 울기만 했다. 계속 울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전거에 지수를 태우고 학원까지 바래다준 엄마였다. 싱긋 웃으며 저녁 뭐 먹고 싶냐고 물어봤던 엄마였다. 방학이 되면 같이 제주도로 여행 가기로 약속했던 엄마였다. 지수는 제발 별일 없기를 기도했다. 그냥 조금 다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수는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텅 빈 집에서 눈을 떴다. 지수는 어제 그 일이 꿈이었으면 했다. 곧 걸려 온 전화로 그게 꿈이 아님을 확인했다.

  “지수야, 여기 병원인데 아빠가 있다가 데리러 갈게.”

  “응, 빨리 와. 빨리.”

  지수는 또 울었다. 그게 꿈이 아니라서 울었는지, 그냥 무서워서 울었는지, 배가 고파서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울다가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이상하게 계속 그랬다. 저녁 무렵에 지수의 고모 세아가 집에 왔다. 세아는 집에 오자마자 지수를 끌어안았다. 지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린 널 두고 어떻게 그렇게.”

  지수는 배가 고팠다. 세아가 사 온 죽을 허겁지겁 먹었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아가 또 울었다. 병원으로 갔다. 가는 동안 차에서 세븐틴의 음악을 들었다. 지수는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음악을 들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미 친척들이 와 있었다. 할머니도 지수를 보자마자 울었다. 지수는 또 울었다. 옷을 갈아입고 세아 옆에 붙어 있었다. 지수는 엄마 사진이 저기 저렇게 있고, 지금 이렇게 슬픈 걸 보면, 정말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세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의외로 방바닥은 따뜻했다. 세븐틴 노래를 들을까 했지만, 이어폰을 차에 두고 왔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친척 중 누군가가 속삭이는 이야길 들었다.

  “자전거 타다 사고 났다며?”

  “뺑소니라던데?”

  “뺑소니?”

  “그래. 안 됐지, 뭐.”

  “아이고, 참.”

  “지수 엄마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택시를 잡으려고 했데요.”

  “택시?”

  “그래, 지수 아빠가 택시 몰잖아.”

  “아이고, 복도 없지.”

  “택시들이 그냥 싹 다 지나가 버렸대. 빨리 병원 갔으면 살릴 수도 있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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