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하 벙커다. 그 축축한 기운은 여전했다. 눈을 뜬 인재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선재였다.
“인재씨, 괜찮아요? 정신이 드나요?”
“아….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잘 돌아왔어요.”
인재는 그 말을 듣자마자 힘이 쭉 빠졌다.
“다행이네요.”
“네, 다들 올 때마다 손님을 데리고 오시네요.”
“네?”
“저기 옆에”
선재가 가리킨 곳에는 영래가 누워있었다. 영래는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민정이 들어왔다.
“아저씨, 아직도 자요? 얼른 일어나요!”
“야, 넌 이게 자는 거로 보이니? 나 아프다고!”
“아프긴, 어딜 봐서요?”
몸을 못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인재는 민정의 말에 팔을 들어보았다. 너무나 쉽게 들어 올려졌다. 다리도. 몸을 일으켜 걸어도 보았다. 멀쩡했다.
“멀쩡하네? 나?”
“정신은 안 멀쩡해 보이는데요?”
인재와 민정은 다른 소설가들을 보러 갔다. 희경과 루키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동혁과 준수는 아직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무영도 누워있었다. 인재는 민정을 그쪽으로 떠밀었다.
민정은 천천히 무영 쪽으로 다가가 말했다.
“아…빠?”
민정의 말에 무영은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그리곤 천천히 일어나더니 민정에게 말했다.
“아빠? 무슨 소린가?”
무영은 아직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진을 통해 어느 정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던 모양이다. 민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를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인재는 상봉한 부녀에게서 떨어져 다시 영래에게 갔다. 영래도 눈을 떴다. 인재가 말했다.
“영감님 괜찮으세요?”
“여긴 어딘가요? 죽은 건가요?”
“죽었죠. 여긴 천국입니다.”
“천국?”
“히히. 농담입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현실 세계?”
“네. 드디어 돌아오셨어요. 이곳 현실의 세계로.”
“민정이는요?”
“물론, 민정이와 영감님 아드님도 같이요.”
영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계속 같은 걸 물어보았고, 인재는 계속 같은 대답을 했다. 돌아온 소설가들은 회복 후 소설가의 서재로 다시 모였다. 서재 응접실에 인재, 민정, 동혁, 준수, 희경, 루키 그리고 영래, 선재 마지막으로 무영 그러니까 민정의 아버지까지 다 모였다. 민정의 아버지는 여전히 기억상실에 현실 부적응 중이지만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영래가 소설가들 앞에 나서며 말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제가 너무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원하시면 어떤 처벌이든 받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영래의 사죄에 다들 어쩔 줄 몰라 했으나 동혁이 한 마디를 날렸다.
“맨입으로요?”
다들 떠나갈 듯 웃었다. 모두의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파티는 밤새 이어졌다. 인재는 서재 앞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시 후 민정이 나왔다.
“아저씨, 뭐 해요?”
“하늘 좀 봐라.”
“와, 오늘 별 잘 보이네요?”
“그래, 전에 소설 왜 쓰냐고 물었지?”
“그랬나요?”
“넌 소설 왜 쓰는데?”
“저요?”
“그래.”
“글 쓰다 보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살아 있다?”
파티를 끝내고 작업실로 돌아온 인재는 노트북을 켜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하얀 바탕에 검은 커서가 깜빡거렸다.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커서를 한참 쳐다보았다. 이상하고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었다.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