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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말

by 서효봉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인재와 민정이 서 있던 복도에서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났다. 인재는 화들짝 놀라서 손전등을 비명이 난 복도 바닥 쪽으로 비췄다. 바닥에서 핏빛 액체가 스며 올라오고 있었다.


“저게 뭐야?”

“피…, 같은데요?”

“그러니까 피가 왜 여기?”

“빨리 엘베나 타요!”

“엘베?”

“아, 엘리베이터요!”

“왜, 짜증이야!”


티격태격하면서도 이미 몸은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층수를 보니 여긴 13층이다. 관리실은 아마 1층일 테지. 인재가 1층 가는 버튼을 눌렀지만, 이상하게 작동이 안 된다. 민정이 눌러봐도 변화가 없다. 할 수 없이 2층을 눌러 거기서부터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는 잘 내려가다 8층에서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누가 장난친 건가?”

“그러게요.”


잠시 후 문이 닫혔다. 다시 한 층을 내려가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인재가 문 닫힘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문은 천천히 다시 닫혔다. 3층까지 내려가 또 한 번 멈췄다. 근데 이번엔 멈추기만 하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거 왜 이래?”

“엘베가 고장 났나 봐요.”

“뭐?”


딱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되는데 고장이라니. 문이라도 열리면 계단으로라도 내려갈 텐데 완전히 갇혔다.


“아, 왜 하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래?”

“어디 비상 연락하는 버튼이 있을 텐데….”


민정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낡은 아파트의 낡은 엘리베이터다. 버튼 위 글씨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하나씩 다 눌러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버튼을 눌렀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됐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되는데 다시 13층으로 돌아와 문이 열렸다.


“아저씨! 안 되겠어요.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요. 이러다 밤새우겠어요!”

“그래, 나도 저거 다시 타기 싫다.”


계단실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13층 정도면 뭐, 하고 시작한 계단 내려가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상한 건 층을 내려가면 갈수록 계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5층쯤 되니 이제는 계단이 너무 길어져 기가 찬다.


“아니, 무슨 아파트를 이렇게 지었어?”

“우리 무슨 저주 같은 거 걸린 게 아닐까요? 아까부터 계속 느낌이 안 좋은데요.”

“야,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부지런히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드디어 3층!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한 층 더 내려갔다.


“으악!”

“아니, 왜?”


3층 밑은 13층이었다. 혹시나 해서 더 내려가 봐도 12층이다.


“내가 지금 꿈꾸는 거니?”

“꼬집어 줄까요?”

“아니, 됐거든.”


13층 복도의 핏빛 액체는 점점 넓어져 이제 복도 바닥이 흥건할 정도였다. 민정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일단, 엘베 타요!”

“또 저걸 타자고?”

“그럼, 여기 살 거예요?”


다시 엘리베이터에 탄 민정은 이번엔 15층을 눌렀다. 버튼이 15층까지 밖에 없는 거로 봐선 거기가 꼭대기인 것 같다.


“왜 위로 가?”

“아래로 못 가면 위로 가야죠.”

“위로 가서 어쩌려고? 뛰어내리게?”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헐.”


띵동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웬 남녀가 서 있었다. 희경과 루키였다. 네 명 모두 놀란 듯 잠시 멈칫했으나, 희경이 민정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그러자 민정이 희경에게 달려가 안겼다. 엉엉 울기 시작했다. 희경은 서럽게 우는 민정을 품에 안고 등을 쓰다듬어 줬다. 루키가 팔꿈치로 인재를 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글쎄요. 무슨 일이…, 많긴 했죠.”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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