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파트였다. 인재가 희경과 루키에게 물어봤더니 그들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내려가지 못하고 계단도 소용없었다. 그러다 민정이 생각해낸 것처럼 꼭대기로 올라와 보니 여기였다. 꼭대기 층이 1층이다. 인재는 복도에 붙어 있는 1층이라는 글씨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게다가 희경과 루키까지 만났으니 이제 한고비 넘겼다 싶었다. 루키가 인재에게 말했다.
“인재 씨 방송 들었어요?”
“아, 그 으스스한 방송이요?”
“네. 관리소로 오라고.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그 친구라는 게 혹시 다른 두 사람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세계들을 쭉 돌이켜보면 만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그럼 일단 관리소로 가 보죠.”
“근데 관리소가 어디죠?”
아파트 입구로 나가보니 밖은 역시 밤이었다. 아파트는 생각보다 더 낡은 아파트였다.주차장엔 차들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이중주차까지 되어 있었다. 건물 모퉁이 쪽으로 가니 아파트 안내도가 있었다.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관리소는 아파트 단지의 정중앙에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치고는 꽤 대단지였다. 인재와 민정, 희경과 루키가 서 있는 곳은 103동 입구 앞이다. 관리소는 109동 앞이었다. 아파트인데 단지 안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손전등으로 건물에 새겨진 동 번호를 비춰보며 가야 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바람 소리를 내며 떨어지더니 와장창 깨졌다.
“으악!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희경이 놀라 머리를 감쌌고, 인재는 물건이 떨어진 곳으로 갔다. 술병이 깨져 있었다. 얼마나 높은 데서 떨어졌는지 완전 산산조각이 나 있다. 루키가 인재 옆으로 와 그걸 보곤 하늘 쪽을 살피며 말했다.
“누가 이런 짓을?”
잠시 후 이번엔 술병 여러 개가 떨어졌다. 폭탄 터지듯이 여기저기에서 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재가 민정의 머리를 감싸면서 외쳤다.
“아, 정말, 여기 어린이 있다고! 왜 이러는 거야?”
“듣는 어린이 기분 나쁘거든요. 좀 나와봐요.”
또 어디서 술병이 날아올지 몰라 초긴장 상태로 관리소를 찾아 나섰다. 주변에 주차된 차들 옆에 최대한 붙어 무슨 특수부대 작전하듯 이동했다. 술병은 두 번쯤 더 떨어졌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잠시 후 인재의 어깨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인재가 바닥에 떨어진 그걸 주워보니 담배꽁초였다. 술병에 이어 담배꽁초라니. 지금 공익광고 찍는 건가 싶다. 이후 꽁초가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더니 점점 많아져 담배꽁초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으악!”
“달려!”
여름철 소나기 쏟아지듯 갑자기 퍼붓는 담배꽁초 세례를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상향등을 켠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나 인재와 민정, 희경과 루키 앞에 와 섰다.
“빨리 타요! 빨리!”
동혁의 목소리였다. 네 사람은 얼른 승합차에 올랐다. 준수가 잽싸게 문을 닫았다. 승합차는 엄청난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해 담배꽁초 지옥을 벗어났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차가 멈췄다. 인재가 머리카락에 꽂힌 담배꽁초들을 꺼내며 준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인재씨는요? 저희는 눈 떠보니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 안이었어요.”
“지하 주차장이요?”
“네, 거기서 빠져나온다고 식겁했죠. 여기 이상해요.”
동혁이 차 시동을 끄며 말했다.
“이상하기만 한가요? 아주, 끔찍하죠! 그리고 민정이 너! 내 다리에 끈 묶은 거 너지? 진짜 혼난다!”
민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들 차에서 내렸다. 관리소에는 누군가 있는 듯 희미한 불빛이 창문 밖으로 새어 나왔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인재가 잠긴 문을 흔들어보며 말했다.
“관리소로 오라더니 문을 잠가 놨네요.”
동혁이 인재 옆으로 와 물었다.
“근데, 우리가 왜 여기 들어가야 할까요? 이미 다 모였는데.”
“한 명이 없잖아요.”
“누구? 아, 그분요?”
그때 ‘딱’하는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관리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실이 나왔다. 당연히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제일 안쪽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왔다. 무영이었다. 인재가 반가워하며 무영에게 뭔가 말하려 하자 ‘쉿!’ 하며 입을 막았다. 그리곤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하게. 그놈이 여기 와 있어.”
“그놈?”
“그래, 그 악마 같은 놈.”
일행은 무영이 나왔던 방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CCTV를 관리하는 방이었는데 낡은 아파트답지 않게 그 방은 최첨단 시설을 갖춘 듯 보였다. CCTV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가 50대는 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뭐 하신 거예요?”
“나도 아파트 안에 있었네. 방송을 듣자마자 여기로 달려와 봤는데. 아무도 없더군. 근데….”
“근데?”
“목소리가 그놈 목소리였어. 방송에 나오던 목소리….”
인재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 방송이 그렇게 살벌하게 들렸던 이유가 있었나 보다. 멀쩡히 잘 나오던 모니터가 동시에 다 꺼졌다. 10초쯤 지났을까? 다시 모니터가 켜지더니 양 교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귀찮은 녀석들.”
인재가 모니터를 향해 말했다.
“이봐요. 양 교수 아니 뭐라고 해야 하나? 악마라고 해야 하나?”
“악마? 여기 악마 아닌 놈이 있는 줄 알아?”
“무슨 소리야?”
“너도 그렇고, 그 옆에 있는 놈들도 모조리 다 악마지.”
“헛소리 그만해!”
인재가 흥분해 소리치자 모니터가 꺼졌다. 반대편 철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서 얼굴에 나무 가면을 쓴 남자가 등장했다. 손에 전기톱을 들고. 희경은 그가 나타나자 민정의 눈을 가렸고 다들 주춤주춤 물러났다. 남자는 전기톱을 켜더니 다짜고짜 희경과 민정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겁에 질린 희경이 소리를 질렀다. 무영과 루키가 남자를 막아섰다. 무영의 손에는 청소용 밀대가 들려 있었고, 루키의 손에는 접이식 간이의자가 있었다. 무영이 소리쳤다.
“내가 잠시 막고 있을 테니 빨리 도망치게.”
다들 미친 듯이 달려 승합차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무영이 달려와 겨우 차에 올랐다. 조금 뒤 발광하듯 전기톱을 휘두르는 남자가 뛰어나왔다. 승합차가 출발했다. 인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영에게 말했다.
“휴, 괜찮으세요?”
“난 괜찮소. 근데 그놈이 이걸 떨어뜨려 가져왔는데 이게….”
“사진이네요? 가족사진….”
빛바랜 가족사진에는 영래와 무영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무영의 옆에 어떤 여자가 갓난아기를 안고 웃으며 서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