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쯤 후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제리였다. 휴게소 뒤편 숲에서 튀어나온 제리는 해루에게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해루는 제리를 안고 어디 있다 왔냐고 물었지만, 혀만 날름거렸다.
미카는 제리가 튀어나온 숲 쪽과 한라산국립공원 안내도를 비교하며 말했다.
“음, 시간상으로 봐선 저기 삼형제큰오름에서 내려온 것 같은데?”
“삼형제큰오름이요?”
“여기 휴게소 뒤편에 있는 저 오름이 삼형제큰오름이야.”
“그럼, 엄마 아빠가 거기 갔을까요?”
“근데, 왜 강아지만….”
미카는 강아지가 나타나는 바람에 경찰에 신고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해루의 부모님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휴게소 앞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삼형제큰오름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경차 한 대 정도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걸어 30분쯤 오르니 ‘군사제한구역’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해루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미카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리가 해루의 품에서 탈출해 팻말 뒤로 뛰어가더니 뭔가를 물고 돌아와 꼬리를 흔들었다. 아빠의 양말이었다.
“아저씨, 이거 우리 아빠 양말이에요.”
“뭐? 양말이 왜 이런 데…”
미카는 해루에게 위험하니 다시 내려가서 기다리자고 했지만 말릴 수 없었다. 해루는 제리를 앞세워 오름 정상으로 나아갔다. 고민하던 미카도 해루를 혼자 둘 순 없어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각종 풀과 키 작은 나무들이 우거진 삼형제오름의 정상은 조용했다. 누군가 지나간 듯한 흔적은 뚜렷했지만 어디로 간 건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오름 정상을 알리는 표지에서 이제 더는 갈 데가 없음을 알게 된 해루가 주저앉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라 미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을 찔끔거리던 해루가 그에게 내려가자고 했을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미카가 놀라 해루에게 물었다.
“해루, 괜찮아?”
“네, 갑자기 왜 이렇게 흔들려요?”
“지진이라도 났나 봐”
위험을 느낀 미카는 해루를 데리고 서둘러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지나온 길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주변은 그냥 온통 풀이고 나무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봤지만, 인터넷도, 통화도 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산에 걸렸고 기온도 갑자기 내려가 쌀쌀해졌다. 삼형제오름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미카와 해루는 유적지 같은 곳을 발견했다. 일제 강점기 때 벙커로 사용된 곳인데 돌계단을 10개쯤 내려가면 사람 2~3명쯤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거의 세 시간을 쉬지 않고 헤맨 미카와 해루는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웅크린 채 제리를 품에 안고 있던 해루는 미카에게 물었다.
“근데, 아저씨 저건 뭐예요?”
“응? 뭐?”
“저기 벽에 빨간 글자요.”
“어디?”
해루가 가리킨 곳을 보니 놀랍게도 돌벽에 알 수 없는 빨간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빛이 났다. 미카는 그 글자에 손을 대 보았고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돌벽이 오른쪽으로 스르르 밀리며 열리더니 그 안에 엘리베이터가 나타난 것이다. 깜짝 놀란 미카와 해루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잠시 후 익숙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내려갑니다.”
해루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저거 타면 바로 밑으로 내려갈 수 있나 봐요. 괜히 고생했네!”
“뭐? 아니, 이런 곳에 엘리베이터라니?”
해루는 제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미카에게 얼른 타라며 손짓했다.
“타요, 빨리.”
“해루, 위험해.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잖아.”
“내려간다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그때 다시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꽤 오랜 시간 흔들렸다. 벙커가 무너질 듯 위태로워졌다. 미카는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혔다.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속도로 봐선 꽤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듯하다. 이상한 건 엘리베이터 안에 버튼이 하나도 없다는 점과 액정 화면에 ‘시리우스’라는 글자가 깜빡인다는 점이다.
“시리우스?”
“어, 저거 별 이름인데.”
“별?”
“네, 지구에서 보이는 별 중에 제일 밝은 별이에요.”
“해루, 그런 것도 알아?”
“저 별 좋아해서요.”
거의 오 분 가까이 내려가던 엘리베이터는 속도가 점점 줄더니 멈춰 섰다. 문이 열리며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리우스입니다. 내려주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해루와 미카의 앞에는 그들이 예상했던 1100고지 휴게소의 풍경이 아니라 어느 도시의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