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마케팅(Experience Marketing)과 브랜드 경험
제가 몇 개의 키워드를 제시해보겠습니다. 어디인지 한 번 맞춰보시겠어요. 강릉, 커피공장,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큰 통유리, 넓직한 주차장, 매장안에 꽉 들어찬 손님들, 개방형 실외공간, 소나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네, 이곳을 가보셨다면 바로 떠오르셨을 건데요. 바로 강릉에 있는 테라로사입니다.
강릉 테라로사는 콘크리트 외벽과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바닥판이 곡선으로 이어져 끊어짐 없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매장 왼쪽 부분의 1·2층 창은 연결되어있고요. 건축물 정면을 전체 유리창으로 시공해 투명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강릉 테라로사를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 같이 칭찬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은 테라로사와 비슷한 매장들이 많이 보이곤 합니다.
그런데 강릉 테라로사 매장은 저작권법으로 인정받은 매장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경남 사천시의 한 커피숍 건축을 의뢰받은 건축사가 테라로사 건물을 모방해서 시공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된 테라로사측은 문제를 제기했고, 법원에서는 사천시에 있는 카페와 테라로사와의 유사성을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테라로사 건축물은 기능 또는 실용적인 사상만이 아니라 창작자의 개성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된다고 본 것입니다. 테라로사측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고 법원은 이를 인정해준 것입니다.
강릉의 명소였던 테라로사는 광화문에도 있고, 서울 대치동의 포스코 건물안에도 있고, 제주도에도 있습니다. 테라로사는 전국적으로 14개의 매장이 있고 2019년도 기준으로 360억원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이 정도의 매출액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테라로사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한 뒤 B2B와 B2C 분야에서 원두 판매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매장 수는 많지 않지만, 각각의 매장에서 테라로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테라로사’ 브랜드를 각인시킨 뒤 원두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유통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테라로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인테리어입니다. 인테리어는 전국 매장마다 차별성이 강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는 컨셉을 갖고 있습니다. 강릉 테라로사는 미술관 같은 커피 공장 컨셉입니다. 에티오피아 국기에서 따온 색상으로 벽면을 채우고 세계 각국에서 모은 구형 그라인더, 각종 연장 등은 '공장'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합니다. 부산 수영점은 고려제강 공장터에 오래된 철판으로 커피바와 테이블을 만든 것이 인상적입니다. 서울 대치동의 포스코점은 1층 높이 6m, 2층도 4m 정도의 압도적인 공간을 자랑하고, 제주도 서귀포 감귤농원과 함께 자리한 제주 테라로사는 젠스타일의 가구들, 무질서한듯한 자유로움이 특징입니다.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는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문화, 그리고 스위스의 철학자 루소의 커피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카페문화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서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번성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카페를 가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가는 공간과 나의 안목이 암묵적인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고 본 것인데요. 이때 루소와 같은 철학자는 커피 한잔을 마셔도 꼭 자신이 가는 카페에만 갔다고 합니다.
내가 가는 장소가 나를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테라로사는 내부공간 설계의 기본 원칙을 엘레강스에 두고 있습니다. 우아해야 하는 것인데요. 테라로사 매장은 아름답고, 미학적, 지적인 컨셉을 유지합니다. 매장마다 컨셉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테라로사 답구나'라고 느껴지도록 하는 것, 엘레강스가 테라로사의 고객경험인 것입니다.
좋은 경험은 좋은 기억이 되어서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도록 합니다. 이것을 브랜드 익스피어런스(Brand Experience)라고 합니다. 경험마케팅, 체험마케팅에서 사용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테라로사는 엘레강스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커피와 공간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비즈니스를 확장중에 있는 것입니다.
테라로사가 처음부터 엘레강스 컨셉으로 접근했다면 올드한 브랜드가 변신한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동서식품의 맥심모카골드입니다. 동서식품은 우리나라 커피산업을 이끌어 온 곳이죠. 그런데 맥심모카골드하면 '엄마아빠가 마시는 커피', '부장님이 마시는 커피' 이런 것들이 연상됩니다. 실제로 어떠신가요? 커피숍의 아메리카노를 선호하시나요? 믹스커피를 선호하시나요?
요즘 신조어 중에 '얼·죽·아'라는 말이 있는데요. 들어보셨나요?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마신다라는 뜻인데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얼·죽·아’를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얼·죽·아 협회'까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젊은 세대는 믹스커피보다는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일반적입니다.
동서식품도 이런 시대적은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타벅스와 블루보틀, 테라로사처럼 스페셜티 시장이 성장하고, 죽어도 아이스커피만 마시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믹스커피 시장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중입니다. 믹스커피는 회사와 가정마다 꼭 구비해두는 생활필수품이 되기는 했지만 어른들이 마시는 커피 혹은 부모님 세대의 커피라는 고정관점이 뒤따라 옵니다. 그렇다고 커피시장을 이끌어왔던 동서식품의 브랜드 헤리티지(heritage), 즉 브랜드 유산을 버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믹스커피보다는 스타벅스가 익숙한 세대와 연결고리를 찾다가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 ‘모카 다방’입니다. 모카 다방은 오래되었지만 좋은 것이라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오프라인 팝업 매장입니다. 오래되었지만 좋은 것들을 찾아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15년도에 제주 ‘모카다방’을 시작으로, 2016년 서울 성수동 ‘모카책방’, 2017년 부산 ‘모카사진관’, 2018년 전북 전주 ‘모카우체국’, 2019년 서울 합정동 ‘모카라디오’ 팝업 카페 등을 운영했습니다.
2015년도에 처음 문을 연 모카다방은 제주도의 한적한 해안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처럼 평소 커피를 마시던 공간에서 벗어나 모카골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모카다방은 젊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모카골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구성했다고 합니다. 제주도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 모카골드를 마셨던 기억, 따뜻하고 편안했던 그 공간의 느낌이 브랜드에 대한 느낌과 어우러져 모카골드를 젊은층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모카다방은 모카책방과 모카사진관, 모카우체국, 모카라디오로 이어지면서 브랜드 익스피리언스에 대한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만일 단기적인 매출향상만을 위해서 이벤트에 참여하면 모카골드를 선물로 준다는 이벤트를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기적으로 매출액 향상에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지만, 아마도 맥심모카골드의 브랜드 수명은 점점 끝을 향해갈 것입니다. 동서식품은 조급함 대신에 그동한 쌓아온 브랜드 헤리티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억지스럽지 않게 젊은세대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맥심 모카골드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캠페인을 진행한 것은 바로 제일기획입니다. 제일기획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광고대행사죠. 제일기획은 오랫동안 동서식품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해오면서 모카다방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카다방 캠페인에서 제일기획은 일관성, 지속성, 공감성이라는 원칙을 갖고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로 일관성(Consistency)을 들 수 있습니다. 모카골드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라는 주제로 일관성 있게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모카다방을 시작으로 모카라디오까지 오래된 것들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것들이라는 주제를 신중하게 선정하고 반영한 것입니다. 모카골드 교유의 브랜드 컬러는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비주얼적으로도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과거의 향수에만 편승하기보다는 모카골드만의 일관된 컵셉을 유지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속에 자리잡도록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속성(Durability)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최고의 광고회사가 진행해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제주에 모카다방을 처음 열었을 때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고객이 방문할지라도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운영을 했고, 다섯 번째 팝업스토어까지 성공적으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기업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수도 있는데요. 캠페인을 중장기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컨셉을 유지하면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공감성(Empathy)입니다. 캠페인은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어야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모카 골드의 오프라인 캠페인은 40~50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젊은 세대에는 ‘뉴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구매로 이어지기 않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맥심 모카골드가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단순히 장소가 좋고,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서식품은 모카다방과는 별도로 이태원에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을 표방하며 '맥심 플랜트' 플래그쉽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5층 건물에 들어선 맥심 플랜트는 좋은 커피를 향한 오랜 철학과 전문성을 '커피나무(Coffee Plant)', '공장(Production Plant)' 그리고 '문화를 심는 공간(Culture Plant)' 세 가지 주제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팝업카페가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컨셉이라면, 이태원의 플래그쉽 스토어는 커피에 대한 전문성을 어필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테라로사와 동서식품을 통해서 브랜드 경험 사례는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단순하게 체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경험을 통한 소통과 긍정적 이미지를 유토하는 경험마케팅은 산업 전반에서 활용될 것입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은 경험을 제공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좋은 경험은 제공해서 잊지 못할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이 팬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화려한 포장이나 좋아보이려고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갖고 있는 본질과 진실성을 파고들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이 경험마케팅 첫 번째 시작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