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지용 알비스 Aug 14. 2024

더 파란만장한 세상으로

파란만장 자폐인 - 에필로그

2024년 8얼 14일 21시 40분, 탈고된 순간

내가 자폐인으로 지내오고 바라본 삶은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자폐를 공개한 최초의 세대나 다름없었고, 대한민국에서 자폐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드러내면서 공개적으로 사는 첫 번째였을 테니 말입니다. 아직 세상은 자폐를 인정하고, 그런 삶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더 많이 자폐를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그렇게 자폐인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는 시점에도 자폐인으로서 겪는 삶은 파란만장합니다. 안정적인 직장 등을 갈구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제 독립을 향한 출발도 머지않았습니다. 이제 이뤄야 할 것을 이뤄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비자폐인들은 다들 이룬 것이지만, 대한민국 자폐인들에게는 아직 허락되지 않은 삶을 말이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세계 속에서도 한국 자폐인이 살아남기 위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오히려 갈 길이 아직도 멀고 먼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폐라는 문제가 해결되는 날 이후에도 진행될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요동치는 것을 자주 느끼고 그러한 것을 저는 파란만장하다고 느낍니다. 편안하고 순탄하게 사는 삶이 아닌 세상 바깥으로 나와 별에 벌 일을 겪으며 갑자기 역사와 세상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는 그런 것이 제가 겪은 파란만장함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졸지에 역사 위에 놓이게 되는 일을 경험하고, 미디어를 통해서도 그렇게 벌어진 일이 알고 보니 거대한 것과 역사적인 순간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일이 많았습니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거대한 역사로 뒤엎어진 그런 것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도박 사건 하나가 결국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은 사건까지 이르렀던 것은 반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흔히 나비효과라고 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저는 아직도 작은 사건 하나가 거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결국 나만의 시대 구분선까지 뒤집어엎는 것을, 작은 결정 하나가 몸 자체를 개조해 버린 것을, 직접 추진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관심 분야를 넓히고 시야를 확장하는 그런 것도 경험해 봤습니다. 이 세계가 얼마나 험하고 모험 많은 세계라는 것은 지금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 깊이와 넓이까지는 아직도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또 다른 모험의 연속이고,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는 아직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또 다른 머나먼 남쪽으로의 모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우 알 수 없고 갑자기 벌어지는 그런 일상들의 연속입니다. 사무실에서도 정규로 해야 하는 일에다 예상하지 못했다가 기습적으로 요구받는 업무까지 수행하고 보면 결국 시계는 점심시간을 지나 퇴근시간임을 알려주게 됩니다. 일상을 사는 회사에서도 갑자기 벌어지는 일 때문에 깜짝 놀라고 그런 와중에, 세상은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갑자기 일이 벌어지는 그런 파란만장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넘을 수밖에 없는 상대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돈의 압박도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돈의 압박을 뚫기 위해서도 계속 일하고 세상을 다녀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폐인마저 돈의 압박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안 해도 되는 일을 해야 하고, 무리해서 일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저도 블로그에 광고를 유치해서 돈을 벌어놓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자폐인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의학 등에 집중되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직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점점 권리 이런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자폐인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도 결국 돈이 안 된다고 판단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결국 돈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니 돈으로 이 문제를 엮는 것도 전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돈, 즉 경제적 문제도 한국을 넘어 이 자본주의 사회의 자폐인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자폐인의 생존 문제까지 연결되는 수준의 사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돈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자폐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자폐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할 것이고 능력주의가 신이 된 세상에서 자폐인을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그런 것과도 맞서야 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한국은 계량화된 객관식 시험 이외의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거나, 스포츠 같이 예외적으로만 용인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자폐인에 대한 것도 좋게 쏠림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닌 안 좋은 것이나 너무 확 쏠리는 그런 것도 과제입니다. 심지어 문화예술도 향유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세상에서 창작만을 너무 강요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자폐인 예술인지, 그것도 예술 전공자로서 아직도 의아한 문제입니다. 얼마 전 ‘발달장애인 예술, 향유에서 창작으로’라는 구호를 봤을 때 정작 이런 세계를 바라본 자로서 정작 정 반대로 적혀야 하는 구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자폐인들이 일과 공부, 즐김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아닌 시설-복지관-주간활동센터 등을 전전하는 그런 것이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야기가 이런 세계로 처음 나오게 된 자폐인의 이야기로 알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일하는 곳도 ‘거둬주는 고용’을 넘어 ‘당당한 고용’ ‘경쟁 기반의 고용’ ‘사회적 경제를 뛰어넘어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고용’을 향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더 같이 있으려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 앞과 옆에서 이 이야기로 자폐인들이 어떠한 세계에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를 더 같이 이야기하러 더 세상으로 나갈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자폐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설 아니면 집이라는 온실 아닌 온실에 갇혀 살며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온실 같은 곳에서 성장한 자들이 바깥 들판 같은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을 봤습니다. 저도 험난한 세상으로 나오는 길을 스스럼없이 택하며 모험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파란만장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더 파란만장한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더 깊고 더 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일부러 회오리치는, 바람 더 많이 부는, 더 복잡한 세계로 갈 것입니다. 직장생활은 앞으로도 어디선가 계속될 것이고, 더 많은 삶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계속 기록될 것입니다. 그 여정은 언젠가 다시 어디선가를 통해 전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은 뒤 또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전할지 저는 아직 답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점에도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음은 전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점엔 더 파란만장해질지, 아니면 편안해지고 잔잔해 질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신만이 아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과연 제가 완전히 독립을 이룬 순간이 될지, 아니면 가정을 꾸리게 되는 날이 될지, 아버지가 될 것인지, ‘여의도 돔구장’에서 일하는 날이 될지, 아니면 서울 한양도성 안 시내 거리의 번잡한 직장생활을 보내게 될지, 아니면 지구 정 반대의 땅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지는 답해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야기이기에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실된 이야기는 아직 끝날 수 없고 헨드릭 빌럼 판 룬(Hendrik Willem van Loon)이 이야기한 대로 거대한 바위를 새가 쪼아대는데 그것이 닳아 없어지는 순간까지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 파란만장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결론지어진 이야기일 것입니다. 


더 파란만장한 세계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모든 위험 등은 감수하더라도, 결국 이 거대한 세상에 거리낌 없이 뛰어든 자폐인들도 있음을 이 세상은 알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그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쓴 날은 결국 더 파란만장한 세상으로 뛰어든 첫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더 많은 한국 자폐인들에게도 이야기합니다. 자폐인들이 더 이 파란만장한 세상 속으로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자폐인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려면 결국 세상으로 뛰어드는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겁 없이 세상에 나왔던 그 모르던 시절과 비슷하게 결국 이 세상으로 뛰어드십시오. 


저는 이제 더 파란만장한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서서히.


2024년 8월 14일 21시 40분, 울산을 넘기 전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이 《파란만장 자폐인》의 모든 이야기를 다 정리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폐인을 직접 만나고 겪으면 어떻게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