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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Ward Feb 12. 2017

나도 알아요 내 나이.

굳이 나에게 그렇게 각인하지 마세요

# 외국 생활을 하다가 들어온 한국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내 나이에 대한 각인'이었다. 외국에서 여행을 하든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할 때 만난 사람들과 '나이'는 이야기의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지내면서, 남녀노소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 이야기를 하니, 이건 마치 어떤 느낌이냐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모두가 외치고 있는 느낌.

 '너 이제 벌써 29야!!! 어쩌려고 그래!!!'

한국에서, 나는 내 나이가 올해로 29 임을 주변인들을 통해 실감했다.

친척들과 있을 때는,
'올해 너 몇 살 되지~? 와 거의 서른이네, 이제 시집갈 때 되었네~ 만나는 사람 없어?'
그래, 친척들의 대놓고 주는 압박은 익숙했다.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이번엔 '네네' 하지 않고 나도 그냥 강하게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렇지만 내 또래 혹은 서른이거나 서른을 좀 넘은 친구들은 생각보다 무기력하고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벌써 나 스물아홉이야, 아홉 수야, 나이 들었어.. 거의 서른인데 내가 뭘 해 이제..'

누가 서른 즈음의 여자들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누가 우리를 이렇게 조급함과 죄책감의 절벽으로 계속 몰아넣고 있는 걸까.


정작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잘 살고 있다가도, 주변의 쓸데없는 오지랖과 관심으로 각인하게 된다.

내 나이는 서른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혹은 내 나이는 서른이 넘었다.

내 나이가 어찌 되었든, 어쩌라고.
나는 알아서 내 갈 길 잘 가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면서 잘 살아가는데, 그만 좀 이야기해 내 나이에 대해서.

이 나이에는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하고, 이 나이에는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고, 이 나이에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런 공식은 누구 좋으라고 만든 걸까. 누가 이런 촘촘한 공식을 만들어 놓은 걸까.

이 사회에 흐르고 있는 저변의 의식.
바뀌기도 힘들고 대부분은 사실, 바꿀 생각도 없다.

내 나이에 대한 각인은 내가 한다.
내 나이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섣불리 점검하고 판단하지 마세요.



# 아버지가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돌아오셔서 다음 날 말하셨다.

"내 친구 딸이 미국 아이비리그 박사를 나와서, 다른 친구들 아들하고 소개를 좀 시켜주려고 했는데, 여자 학력이 너무 높다 보니까 부담스러워서 매칭이 어려워."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얘기가 있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을 때, L언니가 나를 집에서 재워줬었다. 언니는 국내 학, 석사 졸업 후 미국의 좋은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있었다. 언니가 박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한국에서 박사생이라고 말하면, 여자가 박사까지.. 부담스럽다 뭐 그런 시각이 많이 느껴졌었어. 내가 여기서 박사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내가 만난 사람들은 '와, 너 정말 스마트하다, 무슨 연구해?' 하면서 오히려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더라고."


내가 지내고 있는 중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에는 제3의 성이 있는데, 여자, 남자 외에 '여자 박사'라는 성이 있단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자신보다 조금 '덜 잘 나가는' 여자를 원하기에, 박사'까지'한 여자는 부담스럽다는 것.


상해에 가기 전에, 나는 상해의 여자들이 일찍부터 일 전선에 뛰어들었기에, 남자들이 집안일과 육아도 열심히 하고, 비교적 여권이 높고 평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밤에 상해 시내 한복판을 지나가다가, 길거리에서 아내 혹은 여자 친구로 보이는 중국 여자를 무지막지하게 패고 있는 중국 남자를 보았다. 나와 함께 있던 지인들이 말리려고 다가갈 틈도 없이, 그 맞고 있던 중국 여자는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을 패고 있는 그 남자에게 매달리며 그 둘은 빠르게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물론,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도 그런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내가 이런 광경을 목격한 것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다. 중국 남자에게 맞고 있는 중국 여자들. 그래서 사실 상해의 여권이 높다는 말 또한 소수의 사람들에 국한된 말이 아닐까 싶었다.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도 자신이 북경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집안일을 종종하시냐'라고 물어봤을 때, '집안일하는 아이(阿姨:가사도우미)를 쓰면 돈도 얼마 안 하는데, 내가 굳이 왜 하냐'는 입장이었단다.


# 어제 시애틀의 IT 기업을 다니고 있는 미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만약, 성희롱이 너희 회사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돼?'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살짝의 터치를 당했어. 그리고 너가 그걸 성희롱이라고 느꼈다면, 가해자는 다음날 해고야.'


내가 물었다. '만약 성희롱을 당했을 때 나는 누구에게 말해야 돼? 매니저? 인사팀?'


그는 답했다. '인사팀에게 바로 말하면 되고, 그러면 가해자는 바로 짐 빼야 돼. 이게 지켜질 수 있는 이유는, 만약 회사에서 조치를 바로 취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할 수 있어. 그리고 회사는 이후 벌금을 엄청 물어야 돼. 이 벌금을 피하려고 회사에서도 바로 조치를 취하는 거야.'


아, 결국 법이 강력한 거구나. 법의 보호를 받고 있구나.


내가 들은 바로는 상당히 많은 성희롱 사례들이 지금도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의 사내에서 혹은 회식자리와 영업 자리에서. 내가 남자가 득시글한 한국의 회사에서 만약 성희롱을 당했다면, 나는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내 상사? 내 팀의 팀장? 인사팀? 나는 누구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으며, 한다 해도 정당한 조치는커녕 오히려 이상한 소문에 시달리거나, '너가 무슨 짓을 했길래' 하고 피해자에게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한국에서 비슷한 성희롱 일을 겪은 친구에게 나는 무언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사실을 알린 그 누구가 가해자와 가까운 사이이면 어쩌지, 내가 들은 무수히 많은 사례에서 성희롱 피해자는 사건이 밝혀진 이후 오히려 그만두고 잠적하고, 가해자는 뻔뻔하게도 잘 다니고 승승장구한다. 그래서 이런 일을 겪은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나도, 이렇다 할 뚜렷한 해결책을 말해줄 수 없었다..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고 답답했다.


서구권에서 논의, 진행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담론과 비교했을 때, 아시아권에서의 여성 담론은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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