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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Ward Feb 06. 2017

나는 명절이 싫다

쉴 틈이 없는 여자들, 엄마들.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피하고 싶었던 명절이 이번 서울 방문 기간에 공교롭게도 껴 있었다. 명절 때 내가 관찰하고 느낀 바를 공유하고 싶다. 


# 엄마는 쉴 틈이 없다. 

여자들은 분주하다. 여자들은 앉지 않는다.

한국에서 엄마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노동을 너무나 많이 하고 있고 하는 것에 비해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자식 케어, 남편 케어, 그리고 시부모님 부모님 케어까지.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풀타임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엄마에게 이번 연휴는 오래간만에 오래 쉴 수 있는 연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타고난' 부지런함과 책임감으로, 이번 명절에는 그 어느 평일보다 훨씬 바빴다.

매 끼니 음식 해서 가족들 대접하고, 설거지 같은 기본적 명절 일들 뿐만 아니라, 치매를 앓고 계신 엄마의 시어머니, 즉 할머니의 크고 작은 모든 뒷바라지 (치매 환자 케어는 그야말로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다.) 기숙사에 쌓였던 산더미 같은 빨래를 들고 와서 놓고 간 오빠 뒷바라지. 그리고 유학 중 잠시 귀국해서 머무는 나 또한 엄마의 짐일 수 있겠다.


어린 시절부터 워킹맘으로서 항상 바빴던 엄마, 그렇지만 엄마에게 지워지는 모든 집안일들을 몇십 년 동안 '슈퍼우먼'처럼 해낸 엄마.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엄마를 슈퍼우먼으로 만들었는가? 왜 엄마만 이렇게 바쁘고 치열해야 하는가?'

어느 책에서 읽었다. 슈퍼우먼을 찬양하는 문화는 위험하다고. 직장에서든, 육아에서든, 모든 일에서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해내기를 요구받는 이 땅의 여자들은 쉴 틈이 없다.  


엄마의 부지런함과 책임감은 타고난 게 아니었다. 엄마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부지런함을 보는 나는 착잡하다. 


# 고3인 사촌동생이 앞으로를 걱정하며 이야기한다.

 "엄마가 여자는 재수하면 안 된대요. 그래서 저 올해 꼭 대학 가야 돼요."

물론 웬만하면 한 번에 가라, 라는 의미일 수 있겠지만, 프레임 자체가 잘못되었다. '남자인 오빠는 재수해도 되고 나는 하면 안 돼.'라는 의미를 각인하고 있는 사촌동생. 대학 간 후, 외국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사촌동생을 이미 프레임에 가두어버린 그 말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말이 같은 여자인 그녀의 엄마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한국 사회의 여자들은 자신에게 씌워진 차별적인 프레임을 주위 여자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우를 범한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인 오빠와 지속적인 은연 중의 차별을 경험해온 또 다른 '여동생'으로서, 그녀가 그 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시든, 앞으로 그 어떤 결정이든 간에.



# 잘 다니던 회사에 출산 휴가를 내고 몇 개월째 독박 육아 중인 사촌언니가 말한다.

언니는 아이 키우는 일이 보통이 아니라며, 아이가 아빠를 만나는 시간은 거의 주말 정도라고. 주 6일 출근에 매일 야근에 허덕이는 남편으로 인해, 언니는 말 그대로 '독박 육아' 중이었다. "잠깐 어디 나갔다 오려해도 봐줄 사람이 없으면 나갈 수 없어. 잠깐 만이라도 혼자 시간 보내고 싶어."

언니가 새삼 북유럽 이야기를 꺼내며 말한다. 

"한국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6분이래. 북유럽 아빠들은 한 시간 이상 이래."

아내는 독박 육아, 남편은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아내, 남편 모두 힘들다.



# 숙모가 아기를 키우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한다. 

태어난 지 1년도 안된 아기는 먹고 나서 소화를 잘 못하면 누워있을 때도 토를 하는데, 처음엔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상황을 접하고 너무나 놀라서, "악!!! 여보 좀 와봐요!!!!"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만 읽고 있었다고 한다. 바쁘고 무심한 남편으로 인해 아기를 거의 혼자 키우다 시피한 숙모, 그 덕에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는 숙모만 졸졸 따라다닌다.


명절 때 접한 나의 주위 여자들의 모습에서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 내가 점점 한국에서 살고,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이유들. 나는 그렇게 자라왔지만, 내 가족은, 아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때로는 안타깝지만, 내 마음과 방향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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