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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Ward Feb 13. 2017

대치동 키드의 함정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오늘 저녁에 영화를 보고 밤 10시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아니 이건 뭐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일요일 밤 10시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 아이들 픽업 나온 학부모들의 차량으로 도로가 가득 찼다. 겨울 날씨, 두꺼운 파카를 입고 큼직한 배낭을 멘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우르르 거리를 다닌다.


고백하자면, 나는 대치동 키드다. 맹모삼천지교가 엄마를 두고 하는 말인 듯, 우리 가족은 오빠와 내가 초등학생 때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사실, 나에겐 친숙한 광경이다. 내가 대치동 키드로서 약 9년 여간을 보낸 곳이다.


수많은 과외와 학원을 접하고,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의 영향을 경험했던 곳. 대치동은 정말 특이한 곳이다.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회사를 나와 외국에서 지내면서 다시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더더욱 느껴진다.


대치동에 있으면, 사교육비를 지출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엄마들은 나름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정보 공유를 하는데, 누구는 저 학원을 다닌다더라, 누구는 학원에 개인과외까지 한다더라 하는 카더라를 들으면, 엄마들은 자식을 학원에 안 보내면 죄인이 되는 것 마냥 조급한 마음에 줄줄이 사탕으로 학원과 과외를 끼워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이곳의 비즈니스 생태계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식을 둔 친척들은 대치동으로 교육 이주를 하려는데 열심이다. 이주의 목적은 '좋은 학군, 학원, 그리고 그곳에서 쌓는 네트워크 혹은 그들로 둘러싸이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았던, 솔직한 수학 학원 선생님이 내가 고등학생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희는 모르지? 왜 너희 부모님이 너희를 대치동으로 보냈는지. 너희 공부 잘하라는 것도 있지만, 너희 네트워크를 위해서 그런 거야."라고 했을 때,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작년 상해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했다. 상해에서 외국 친구에게 나는 '프린세스'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화장실 청소를 무엇으로 해야 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변기 물을 파랗게 만드는 블록을 변기 안에 넣어버려서 막히는 등의 상황이 왔을 때 쩔쩔매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하긴, 고등학생 이후부터 독립해서 살아온 친구에게 나는 얼마나 어이없는 존재였을까. 한국에서조차 나같이 대학 이후까지 부모님 집에서 사는 케이스가 많이 없기는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걱정해서 잘해주고 지원을 해주는 것의 맹점은, 아이가 이후,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거다.


나는 고등학교 수업이 끝났을 때, 픽업 나온 친구 엄마의 차를 타고 다음 스케줄인 학원으로 종종 이동하곤 했다. 학원이 끝나는 10시나 11시쯤에도 버스 혹은 친구 엄마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아이들은 이미 과잉보호와 지원 속에서 살아간다.

어차피 목적은 단순하다. '수능, 내신 점수만 올리면 된다.'

엄마들은 몇십에서 많게는 몇백만 원의 학원, 과외비를 매달 지출한다. (이것도 점점 경쟁적이 되어간다)


아이들은 완벽한 보호와 통제 속에서 오직 '문제를 잘 푸는 아이'가 되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서 달린다. 몇 년 동안. 나 때만 해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그래도 놀이터에서 많이 놀곤 했는데, 요새는 사교육이 영유아까지 간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오히려 그래서, 어른들의 기대치와 자신의 미래 플랜을 완벽하게 끼워 맞춘 아이들(모범생들)은 마음이 편하다. 아, 물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리느라 피곤하긴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 올리기'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편하다. 대치동에서 그 이외의 고민 따위는 '사치'이자 '쓸 데 없는 것'이었다.


나도 사실, 그런 아이였다. 고1 때까지 나는 미대 진학을 고려하는, 미술을 많이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성적이 잘 나와서 '아깝고', 미대 가면 '돈이 많이 든다' 등의 이유로 문과로 진학을 결정했었다. 고2 때 한 살 위인 오빠가 보기 좋게 수능에서 미끄러지고 재수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대학 가는 것이 쉽지 않는구나'를 느끼고 그때부터 수능과 내신 점수 올리기에 매달렸다. 하루 플랜을 빽빽이 세워서 지켜나갔다. 오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수학, 그다음은 영어, 그다음은 언어, 그다음은 사회. 이런 식으로. 그러나 나도 한 번에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재수를 했다. 재수 시절, 기억나는 것은 닭장 같은 재수학원의 독서실과 강의실. 매일 먹던 도시락과 김밥. 추리닝을 입은 아이들과 함께 우르르 다니며 공부, 또 공부했다. 나는 정말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의 고2, 3, 재수 때의 기억은 정해진 것을 위한 공부, 또 공부였다.


대학 진학 이후 대치동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대치동에 거주하는 목적 자체가 학군과 학원이었기에, 고교 졸업 후 대부분 이사를 간다. 진학한 대학 레벨에 따라서 만나는 아이들도 점점 끼리끼리 만나게 된다.


대치동 학원가 거리를 가득 채운 검정 파카를 입은 어린 학생들을 보는 나는 씁쓸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학원 비용과 암기에 들였던 시간들.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할 시간은 있을까? 여유는 있을까?

내가 그랬듯, 빽빽한 스케줄을 쳐내느라, 경쟁하느라,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을 생각할 시간조차 있을까?


나의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여전한 방황은 어찌 보면, 그때부터 제대로 시작되었어야 하는지 모른다.

내가 매일매일 문제집을 풀고 인강을 반복해서 들으며 암기하고 있었을 그때, 나는 좀 더 다른 고민을 했어야 하고, 다른 경험을 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생 자식 둘을 둔 지인과 이런 대화를 하면서,

'과거 대치동 키드로서, 대치동에서의 그 치열한 학원가 생활이 과연 저한테 무엇을 남겼는지 의문이에요. 핀란드 고등학교 교육 사례 보셨어요? 이제 개별 과목도 허물고 수학, 과학, 언어 등 다양한 학문의 선생님들이 모여서 아이들에게 주제를 하나 던지고 이것을 풀어나가는 수업을 한대요'라고 하니, 지인이 이렇게 답했다.

'핀란드의 다학제적 교육을 논하기엔, 핀란드와 한국은 출발 지점이 달라. 그건 마치, 엄마가 가진 빌딩에서 임대료 받으면서 서울에서 사는 애랑 매달 자기가 월세 벌어서 내면서 사는 애랑 비교하는 것 같달까? 선진국들은 원래 자원도 많았고, 현재 선진국 대열에서 유일하게 과거 식민지가 없었던 나라가 우리나라더라. 한국은 50년 정도 뒤면 그 정도의 교육이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런 점에서 지금, 핀란드의 교육을 여기서 논하는 건, 너무 나이브한 생각 아니야?'


음, 50년 뒤면 나는 80살인데.. 내가 몇 년 뒤에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면, 아이는 그때 50살 정도 되었겠다.


이제 그 어떤 정보든 구글 검색하면 바로 나오고, 세계 다른 나라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동영상으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에 한국의 아이들은 여전히 암기 위주의 주입식, 일방적 교육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 많은 서포트를 받으며 곱디곱게. 일요일에도 밤 열 시까지.


매우 안전하게 곱게 자란 아이의 함정은, '혼자 생각하고 실행하고 해결할 힘을 못 기른다'는 거다. 부모와 주위가 원하는 엘리트 길만 찬찬히 밟아온 아이들은 그 외의 다른 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생각하려고 해도 작게나마 시도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고 무기력하다. 그래서 더더욱 그 본래의 엘리트 길만 밟아나간다. 내가 해본 게 이것뿐이고 쌓인 게 이것뿐이니.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엘리트들은 그래서, 자기들만의 그룹에 갇히게 되고 더더욱 틀에 박힌 사고는 굳어간다.


이렇게 말 잘 듣는 아이, 질문하기보다는 받아 적고 빨리 암기 잘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을 '대량 생산'해내서 다 같이 얻는 건 무엇일까?


오히려 나는, 지방에서 학원 하나도 안 다니고 입학한, 대학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에너지를 많이 얻는다. 그 친구는 대학을 학원으로 바르는 대신, 자기 스스로 공부해서 왔고, 대학 생활과 이후 커리어 또한 자신답게 독특하게 밟아나간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스텝을 설계하고 나아간다. 다른 그 누구와도 다르게. 그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대치동 키드들, 혹은 나에게 필요했던 건 어쩌면,

그 수많은 빽빽한 스케줄과 암기가 아닌,

나에 대한 앎, 세상에 대한 경험-그것이 책과 같은 매체든 직접 부딪히는 것이든, 그런 것 아니었을까?


예스맨을 키워내는 교육, 여전히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교육 환경은 예스맨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과 공직 사회에도 적용되고 있다. 모든 것이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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