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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Ward Feb 07. 2017

생각하는 시장의 크기가 다르다

내가 만난 세계의 아이들

# LA에서 느낀 싱가포리안의 경쟁력

지난여름, 나는 남미와 북미를 옮겨가며 현지 혹은 한국에서 날아오는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정을 반복했다. 일정상 LA에서 나는 혼자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LA 할리우드의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다가 이야기를 하게 된 싱가포리안 C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C는 싱가포르의 명문 난양공대의 3D 스캐닝 분야 박사생으로, 텍사스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한 후, 미국 서부 여행을 하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할리우드 거리를 같이 돌아다녔는데, 남미의 드넓은 자연과 낮은 물가의 환경에서 LA로 와버린 나는, 할리우드 거리가 그렇게 상업적 이어 보일 수 없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할리우드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보이는 산타모니카 쪽으로 이동을 했다. 마침, C도 산타모니카 근처에 아는 미국인 친구네로 숙소를 이동한다고 해서, 산타모니카 쪽에서도 그와 그의 미국인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둘의 인연은 신기했다. 학부 시절 네덜란드 소도시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만난 인연으로, 둘 다 전공이 3D 스캐닝 분야였고, 그의 미국인 친구는 현재 LA의 3D 스캐닝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C가 이야기했다.


"여기 온 김에, 한번 이 친구네 회사에 면접 보고 왔어. 지금 결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딱히 이걸 생각하고 LA에 온 건 아니고, 관광차 LA에 들렀는데, 마침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둘의 분야도 같은 만큼, 그리고 박사 막바지인 만큼, 면접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각자의 일정으로 흩어지고 몇 주 후, 연락이 왔다.


"나 그 회사에서 오퍼 받았어! 비자 문제 처리되면 빠르면 10월부터 여기 와서 일 시작할 것 같아!"


나는 그전까지 싱가포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C와의 대화를 통해 싱가포르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싱가포르의 다양한 인종 중 중국인들의 파워가 제일 크다는 사실 등을 알았다.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3D 스캐닝이라는 전문 분야를 가졌기에 그는 이렇게도 우연히, 여행을 하다가 잡 오퍼를 받았다.


나는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중국어는 갓 시작했으며,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겨우 들어갔는데, 이 아이는 이미 영어, 중국어가 능통하고, 전문 분야를 살려 미국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한다. 나는 관광차 들렀던 LA에서 생각지도 못한 자극을 받으며, 이때부터 싱가포르 사람들 그리고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가진 경쟁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멜팅팟 상해에서 만난 아이들

중국, 특히 내가 있는 상해는 미국과는 또 다른 멜팅팟처럼 느껴진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과 비즈니스맨들이 각개전투를 벌이는 느낌이랄까. 내가 속한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인터내셔널'하다. 이 곳에서 나는 북미, 서유럽 국가 학생들 뿐만 아니라, 평소 접해보지 못한 동유럽,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타히티에서 온 반 친구 V양과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타히티 섬에서 태어나,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지역인 몬트리올에서 대학을 나오고,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을 했었고, 상해 석사를 시작하기 전, 대만에서 3개월 동안 오로지 중국어만 쓰다가 와서 나보다 중국어도 훨씬 잘하는 다재다능한 아이다. 현재 프랑스어 과외를 상해 아이들에게 하고 있으며, 나에게 싱가포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줬다. V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일단 상해에서 2년 석사로 있다가, 나는 홍콩에서 일하고 싶어. 아시아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


아니, 이 프랑스어권에서 온 아이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홍콩에서 일할 거라고 하는 말에 나는 좀 놀랐다. 이미, 상해에서 석사를 하면서 접한 무수히 많은 외국 아이들(심지어 대다수가 나보다 어리다)이 나보다 아시아에서의 경험이 더 많고, 중국어를 잘하는 애들도 너무 많아서 항상 놀라움과 자극을 받곤 했었지만.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아시아권에서는 같은 아시아인인 내가 더 유리할 수 있다. 언어든 문화든. 그런데 나는 취업 준비할 때 한 번도 한국 밖에서 일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인적성 모의고사 풀고, 면접 스터디 꾸려서 대기업 면접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생각하는 시장의 크기가 다르다. 시야가 다르다.


상해에서 만난 호주인 B군이 중국어를 접하게 된 경유도 참 특이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부모님의 지원이 중단된 B는 호주 브리즈번 카페의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시작해, 카페 경력이 6년 이상이다. 신기한 것은 그 카페의 주인과 직원들이 대만 사람들이어서, 이들과 대화를 하려면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더 효율적이었다. B는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카페 주인 및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국어로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중국 톈진과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을 했고, 일본어와 말레이어에도 관심이 많다. 방학에는 대만에 가서 중국어를 공부할 예정이며, 졸업 이후에는 홍콩과 상해 등지의 금융권에서 장차 일하고자 한다.


상해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은 단지 일부 예시일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상해에는 정말 다양한 경험과 이력을 가진 외국인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왔고, 그래서 상해에서는 독특한 에너지가 넘친다. 


자유를 찾아 떠나온 상해였는데, 나는 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아이들이 널려있는 상해에서 오히려 하루하루 전쟁처럼 살아간다. 매일 고민한다,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 한국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내가 재수학원에 틀어박혀서 수능 문제를 반복해서 풀 때, 차라리 밖으로 나와서 경험할걸. 한국에서 지금까지 나름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나의 글로벌 경쟁력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정답을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다. 하루하루가 치열하지만 그만큼 더 일찍 깨달아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전처럼 무기력하지 않다. 무기력하기엔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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