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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Ward Feb 05. 2017

시애틀 아마존 본사 개발자와의 대화

가고자 하면 길이 보인다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만나는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대학 시절, 나는 온통 관심이 유럽에 쏠려있어서, 미국이나 남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퇴사 후 나의 여행 일정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주일 이후 에콰도르, 콜롬비아, 멕시코 여행을 거쳐 LA로 올라와 시애틀 그리고 밴쿠버까지였다. 내가 짠 미국 서부 여행 스케줄을 본 미국인 친구는, '이거 완전 출장 스케줄인데?'라고 말할 정도로 조금은 빡센, 관광보다는 나의 목적에 충실한 스케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의 기업들과 학교들을 방문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나는 에어비엔비 본사, 우버 본사, 스탠퍼드대학, UC 버클리대학 등을 방문했고, 시애틀에서는 아마존 본사에서 근무하시는 분을 만나 뵈었다. 이는 모두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된 지인들의 감사한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것도 신기한 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찍으니, 그 방향과 직접/간접적으로 연관된 지인들이 떠올랐고, 샌프란에 도착해서 지인이 소개를 통해 기회가 열리기도 했다. 내가 방문한 장소도 장소지만, 여기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더 많았다.


Seattle  / Seattle Public Library


시애틀에서는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아마존 시애틀 본사에서 개발자로 일하시는 한국인 분과 점심시간 즈음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마존 빌딩 1층 스벅에서 드디어 그분을 만나 뵈었는데, 배낭을 들고 계셨다. 서로 인사를 하고, 여쭤보았다.


'가방 가지고 오셨네요, 어디 가세요~?'

'아, 오늘 사무실에서 일이 잘 안돼서요, 집에 가서 하려고요.'

'네?!?!'


이야기를 해보니, 한국에서 나고 자라시고, 한국 대기업에서 개발자로 몇 년 일하시다가 퇴사하시고,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거라고. 이 곳에서는 업무만 제대로 진행된다면 근무 장소는 상관이 없어서, 가끔은 집에서, 도서관에서 일을 하기도 하신다고.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했을 때, 이 곳에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아이들을 키우시는데, 숲 속에 있는 학교의 놀이터에서 오후 3시 수업이 끝나고 저녁 5시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해주셨다.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얘기하셨는데, 초중고에서 모두 말 잘 듣는 아이를 만드는 문화가 결국 기업에까지 이어진다고. 이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계속 질문하고 생각하게 하고 책을 많이 읽힌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방과 후 각종 학원들에 시달리다가 저녁 늦게서야 잠이 드는, 암기하느라,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바쁜, 한국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인재가 한국을 나가지 않게 하려면, 그런 환경을 먼저 제공해줘야지요.'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이런 교육 시스템, 이런 업무 환경, 이를 통해 우리가 얻는 건 뭘까.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에서 사는 똑똑한 한국인들을 만나니, 다들 방법을 찾아서 이리저리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면서 삶을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같이 느끼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구나. 그리고, 방법을 찾는다면 길이 보인다.'

감사한 인연을 통해, 마음속의 용기를 얻었다.

자신의 가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앞으로 나의 커리어, 상해 생활, 재정적인 고민 등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분을 만나니 나도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과 움직임이었지만, 차분히 스텝을 밟아 원하는 삶의 형태를 가꾸어나가고 계셨다.


Vancouver Granville Island Public Market / Vancouver Stanley Park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넘어갔을 때, 친구의 차를 타고 있던 중이었다. 오후 4시였는데 안 막히던 길이 갑자기 막히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차가 막히지?'라고 물었더니

'아, 밴쿠버 사람들은 4-5시부터 퇴근 시작이라서, 원래 이래.'

'뭐라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잠시 머물며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사람들과의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일하려고 하는지, 가서 보고 깨달았다. 이미 상해행을 결정해버린 이후였지만, 한 번쯤은 이 곳에서 공부하거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모든 건 경험해야 보인다.

역시, 가고자 하면 길이 열리고 사람이 열린다. 내 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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