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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Feb 06. 2022

우리에게 MBTI란

MZ세대의 자기소개

스무 살 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주인은 '학생 혼자면 좁은 방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빠랑 같이 왔으니까 괜찮은 방 보여줘야겠네.'라며 채광 좋은 원룸을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마치고 복도를 걷다가, 주인은 내가 혼자 왔다면 내어줬을 거라던 방을 보여줬다. 문을 열자마자 왼쪽엔 싱크대가 있었다. 음식을 하려면 발이 현관에 닿아 있어야만 했다. 햇빛은커녕 제대로 된 창 하나 없었다.


그 날은 내가 어른에 대한 실망을 한 스무 번째 쯤 한 날이었고, 어른이 된 내게도 아직 어른이 필요하구나를 깨달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 대신 살게 될 학생의 생각에 하루가 조금은 씁쓸해졌다.


나는 18학번이다. 2학년 때까지 코로나19가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2년은 대학생활을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MT도 가고 매일 같이 술도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셨다. 2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또 멀어졌다.


대학교 친구는 그동안 만나온 동네 친구들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또 완전히 다른 친구들이었다. 그동안 사귄 친구들은 비슷한 동네에 살았다. 아무리 멀어봤자 마을버스를 타면 만날 수 있었고, 모두가 비슷한 말투를 썼고 비슷한 환경과 집에서 자랐다.


그러나 대학교는 전국 각지에서 몰린 친구들의 만남이었다. 모두가 사는 곳이 달랐으며, 귀해서 매력적으로만 보였던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내 친구가 되기도 했고, 나이가 다른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무살의 내겐 모든 만남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었다. 학생 때 비슷한 목표로 비슷하게 공부하며 전공을 선택한 만큼 미래 얘기를 하는 데 있어서는 그동안 사귀어왔던 친구들보다 빠르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쨌든 내가 대학생 때 MBTI가 유행했다. 잠시 뜨거웠다가 식을 것 같았던 유행이 식기는커녕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3학년이 되고부터는 여럿이 만나 무리 지어 놀 수 없었다. 원래 술을 마시고 자주 놀고 밤새 놀고 하면서 저 친구는 저런 성향이구나 밤에 깊은 대화를 하며 이 사람은 이렇구나 느낄 텐데 그런 걸 알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MBTI는 나를 쉽게 드러내는 수단이 된 것이다. 이제는 첫 만남에는 무조건 MBTI가 뭔지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트렌드 책에서도 이런 현상에 대해 적혀 있다. 성격유형검사가 멀티 페르소나 시대에 우리를 명확히 해줄 명분이 되었다고 한다.


MBTI가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뭐만 하면 MBTI와 연관 짓는 것이 싫은 것이겠지만, 모든 과한 것은 좋지 않은 게 맞지만 적당한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재미난 것은 MBTI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만의 MBTI가 또 있다.


나는 MBTI로 사람들의 사고를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MBTI는 질문에 어떤 걸 선택하든 16가지 유형 중 하나가 나온다. 어떤 유형이 나오든 오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MBTI와 관련해서 같은 상황을 보고도 전혀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며 사람들의 공감과 흥미를 이끌어냈다. 나는 이런 콘텐츠들을 접하며 사람들이 다름과 틀림을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길 바라고,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다쳤을 때 병원을 가라고 하는 말이 그동안은 상처였다면 그렇게 해결방안을 제시해주는 게 그 사람의 관심 표현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사실 MBTI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했다. 예전부터 내가 생각했던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지만, 내 메모장에 적어둔 글을 다시 읽으며 애써 그런 마음을 지운다.

'행동하지 않은 생각과 말은 다 쓰레기다. 실천하지 않은 것은 아무 소용 없다.'


나는 MBTI 검사를 사실 19살 때 해봤다. 그때의 결과랑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의 결과랑 현재의 결과가 또 다르다. 내 특성이 한쪽에 치우쳐있지 않고 가운데쯤 위치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것은 두 번째다. 난 늘 N에 치우쳐져 나온다. 지금 나의 MBTI는 INFP이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시작을 나의 스무살 자취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사실 바로 옆집에 살던 사람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우리 학교 원룸촌은 아주 시골,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웃 사람은 모두 동문이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긴 편지와 음료수가 걸려있었다. 옆집 사람이고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인데, 집에서 음악 연주를 하는 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주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소리에 예민한 편도 아니고 (그땐 술을 마시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아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되려 그 편지를 받으니 종종 들리던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긴 답장을 써서 옆집에 걸어두었다. 공짜로 좋은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우리는 어쩌다 SNS 친구가 되었다. 사실 종종 학교에서 마주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소심한 내향인이라 인사도 하지 못했다. 복도에서 만나면 목례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연락은 전혀 하지 않지만 SNS를 통해 그 사람이 올리는 글은 종종 본다. 그러다 알게된 그 사람의 유형은 INFP였다. 그래서 그런 장문의 쪽지를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웃음이 났다. 나도 그래서 장문의 답장을 보냈구나.


그럼에도 그 사람과 나는 INFP라서 연락을 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날이 온다면 먼저 연락을 드리고 싶다. INFP로 살아오느라 힘들 때가 많겠다고. 우리는 멀리서 종종 잘 살길 바라는 친구가 되자고.


고작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눌 수는 없다. 우리는  명이 있으면 백가지 유형의 사람들이니까. 사람을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그렇게 느낀다. 성격유형검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수단 정도로 즐기면 좋을  같다. 물론 MBTI 사람을 판단하고 관계를 맺거나 끊는 것처럼 본인의 인생을 거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참고로 나는 ENFJ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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