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오춘기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 과음을 하였을 경우(나의 경우는 소주반 병이 적정량이나, 1병을 먹었을 경우가 과음이다. ) 어떤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를 해가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소주 1잔에 얼굴이 빨갛게 변화하는 것은 이런 부류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기본기이다. 그러니까 보통 술자리를 시작하자마자 얼굴이 홍당무 혹은 심지어 딸기색으로 변화가 바로 된다. 스스로 얼굴색 변화 때문에 주의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사회적 분위기상 권주를 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건배제의가 오면, 단번에 못 마시니 홀짝홀짝 나눠 마시게 되면 모양이 빠져서 살짝 민망하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술보다는 안주빨을 채우고 나면 배도 부르고 술 대신 물을 마시면서 멋쩍은 술자리를 이어나간다.
사람들은 술을 왜 마시는가? 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맞다면 나 같은 사람은 엄청 효율적이다. 남들은 3병~ 4병을 마셔야 만취상태가 되지만 나는 3~ 4잔만 마시면 그들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시간도 절약되는가?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여전히 나의 기준(71년 돼지띠)에서는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할 때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능력자였고, 내가 가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회적 능력치를 보유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지금 보다 술을 잘 마실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보다 훨씬 잘 나가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라는 가정법 과거형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노력해도 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 질책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철없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시대가 변하여 요즘은 Mz들은 회식을 점심에 피자, 수제버거(고급버거?)로 한단다. 남자가 출세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새는 술을 잘 못 마셔도 임원 및 고위직반열에 올라가는 선후배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태생적으로 술은 약하지만 술자리를 좋아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슷한 주량과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같이 보조를 맞출 수 있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해주고 받을 수 있어서 부담이 좀 덜하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끼리만 모여서 회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굳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술 말고도 다른 재미있는 유희거리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축하받을 일이 생기는 경우 주량보다 많이 마시게 되는데 이런 날은 잠들기도 힘들고,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깨는 경우가 있다. 잠의 질이 확연히 떨어지고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깬다. 천근만근 같은 육신을 이끌고 일터로 가서 사무실에 앉는다. 출근은 했으나 일은 도무지 되지 않는다. 머리가 얼어붙어서 메일을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른 체 그냥 자리에 앉아있는 상태로 냉수만 마시면서 오전 내내 멍을 때린다. 이른바 "숙취멍"이다. 오후가 되면 조금 정신이 찾아와서 상태가 회복이 되는데, 점심을 먹어서 인지 취기가 아직 남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졸음이 미친 듯이 몰려온다. 그렇게 버티고 나면 드디어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아, 그런데 이상하게 컨디션이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바뀌 기기 시작한다... 또 술이 생각난다,, 오늘 저녁은 또 누구와 한잔 기울이면서 볼 빨간 내 얼굴을 뽐내어야 하나.....
p.s) 내일 또 워크숍이 있다. 끝나고 또 한잔하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