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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솔 Sep 13. 2024

따뜻한 사이코패스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부동의 '카카오톡 선물하기' 1위 상품이다. 덕분에 기프티콘 결제 시스템도 고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테면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어도 다른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추가금을 내고 더 비싼 쿨라임 피지오를 주문할 수도 있고, 싼 가격인 오늘의 커피를 구매해서 남는 금액은 스타벅스 카드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고객이 그런 규정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면, 아메리카노만 구매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프티콘 사용 고객에겐 "다른 음료도 주문 가능하신데 아메리카노로 그대로 해드릴까요?"하고 묻는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4500원)으로 카스텔라(4500원)를 주문하는 고객이라면, "이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으로 카스텔라만 결제하시는 거 맞으실까요?" 하고 주문 내용을 한번 더 확인해드리곤 한다.


그날 그 고객은 수많은 기프티콘 사용 고객 중 한 명이었다.


"이거요."


세 글자와 함께 내 앞에 샌드위치를 툭 던지듯 내려놓은 그녀는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보여주었다. 첫마디부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은 주문 끝날 때까지 기분 나쁘게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엔 대우주가 소우주 안에서 반복된다고 여겼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대우주적 관점이, 커피 주문이라는 소우주에서도 반복된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기프티콘으로 샌드위치 구매하시겠어요?"


"이거 쓴다고요."


"네 고객님. 샌드위치만 구매하시는 걸까요, 아메리카노도 같이 구매하시는 걸까요?"


"저기요. 제가 이거 쓴다고 했잖아요."


"기프티콘으로 샌드위치만 구매하신다는 말씀이실까요?


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요?"


POS에 상시 작동하는 녹음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고객이 볼 수 있는 가격표시기 옆에 작은 화면을 만들어서, AI가 자동으로 대화록을 올려준다면? 모두가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면? 불필요한 논쟁은 사라지고 우리 사회는 적어도 에스프레소 샷 글라스만큼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죄송합니다. 바로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기프티콘 사용하셔서 차액은 1300원입니다."


"저기요."


"네?"


"샌드위치 추가했잖아요. 왜 차액이 1300원밖에 안 돼요?"


"아... 아메리카노도 하시고, 샌드위치도 구매하시는 건가요?"


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안 보여요? 아메리카노잖아요.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죄송합니다, 고객님. 바로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나를 경멸 가득한 눈으로 흘기며, 내가 건네는 영수증을 탁! 낚아채며 POS에서 나섰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들으란 듯이, 아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살 좀 뻗혀 보란 듯이 제법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우 답답해. 왜 이렇게 이해를 못 해."


이날, 나는 내가 어떤 모욕에 가장 취약한지 깨달았다. 내 헐렁한 에고의 많은 부분은 지적허영심으로 채워져 있다. 그녀의 발언은 이 부분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멍청하다는 말은 참기 어려웠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을 때면 내가 얼마나 부족하며 또 얼마나 멍청한지 끊임없이 깨닫게 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육성으로 멍청하다고 듣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다.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야 했다. 빵빵했던 지적허영심 풍선에 스크래치가 나서 바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흐물거리는 풍선을 다시 올리려면, 빠져나왔던 지적허영심을 불어넣어야 했다. 그래, 저 멍청한 것을 똑똑한 내가 이해해야지.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타자를 그저 즉자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자들에 의해 지옥이 만들어진다. 당신이 사르트르를 읽어 본 적은 있겠어? 자연과학적 명제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면 침묵해야 하거늘. 당신이 비트겐슈타인을 읽어 본 적은 있겠어?




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빈 접시, 머그잔과 꼬깃한 물티슈가 올려진 트레이를 컨디먼트바에 올려놓았다. 나는 마침 컨디먼트바를 정리하고 있었다. 원수는 컨디먼트바에서 만나는 법이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떨렸던 내 마음이 이제는 고요해졌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 먹어야 가장 맛있다. 시간이 지나 감정이 사그라드니 숨어있던 악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고객님."


"네?"


나는 그녀가 갖고 있는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사고방식', '종업원을 하대하듯 말하는 방식'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모욕을 주고,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도덕 수준'을 잃지 않길 바랐다. 그러니까, 너는 평생 그러고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중하게 사과를 건넸다.


"아까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거, 죄송합니다."


오늘 POS에서 오고 간 대화에 당신 잘못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멍청하고 이해력이 부족한 제 문제이죠. 그러니 당신의 태도를 영원히 바꾸지 마십시오. 그래야 그 태도 때문에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입게 될 테니까요.


내 마음의 소리가 그녀에게 잘 전달되었을까. 그녀는 잠시 당황해하던 눈치를 보이더니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그 웃음의 의미가 자신이 한 행동엔 아무런 잘못 없었음을 재확인하는 지점이었기를 바란다. 내 안의 악마도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때를 후회한다. 사과는 애초에 그 고객에게 아무 영향 주지 못 했을 것이다. 사과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후회하는 건 그때 마음속으로 바랐던 그녀의 비극적인 앞날들이다. 모욕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게 그 고객이 평생 무언가에 시달려야 할 정도로 큰 죄는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그런 내 모습이 비열해 보였다.

 

내 MBTI에 대한 설명으로 '따뜻한 로봇'이라는 표현을 본 적 있다. 나는 그 단어를 좋아한다. 따뜻한 건 모르겠고 똑똑해 보이기 때문이다. 초라한 지적허영심이 자리 잡고 있는 내 자아를 간지럽혀주는 단어였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조차, '엄벌주의적일수록 지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지금 하고 있는 후회가 오롯이 도덕적이지 못 했던 생각에서 비롯된 성찰이었을까? 지성인이라면 그저 엄벌주의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허영심이 작용하진 않았을까?


나는 종종 내가 '따뜻한 로봇'이 아니라, '따뜻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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