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엔 카카포라는 이름의 대형 앵무(새)가 살고 있다. 앵무라 하면 모름지기 앙증맞은 외모에 익살스럽게 사람말을 따라 하는 풍경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카카포를 영상으로 처음 접했을 땐 고도비만으로 인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 꼭 할머니가 마당에 풀어 키우시던 육중한 토종닭을 연상시켰다. 카카포는 굴러갈 듯 동글동글한 외형과 더불어 다른 특징으로도 유명한데, '닭'이라는 비유에서 알 수 있듯 날지 못하는 새다.
인간이 도착하기 전까지 뉴질랜드는 육상포유류가 살지 않는 섬이었다.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이 조류는 "굳이?" 라면서 비행과 관련된 능력을 퇴화시키고, 사방에 널려 있는 달달한 과일들을 주워 먹으며 복부지방은 진화시켰다. 새대가리라는 욕이 괜히 있을까. 카카포는 현재에 안주하며 땀 흘려 노동하지 않은 대가로 최악 포식종인 호모 사피엔스라는 원숭이를 만나 멸종위기종이 된다.
스타벅스에 몸 담은 지 8년이 되어간다. 이곳은 바리스타로 시작해서 수퍼바이저, 부점장, 점장으로 이어지는 직급체계를 갖고 있다. 더 높은 직급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앞치마를 입는 '현장직'은 점장까지다. 나는 오랜 시간 수퍼바이저에 머물러있다. 나와 비슷한 경력의 파트너들을 보면 점장까지 달고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진급하기 위해선 직접 지원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아직 1차 서류조차 내본 적 없다. 나같이 게으르고 얄팍하게 잔머리만 돌리려는 인간이 지원을 해봤자 결과가 어떨지 뻔하기 때문이다.
진급을 못 했다고 허송세월 보내진 않았다. 매일 무료로 제공되는 액상과당 가득한 복리 음료 덕분에 내 몸엔 지방이 풍부하게 축적되었다. 배가 볼록히 나온 채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면, 연두색 빛깔의 깃털에 뒤덮인 채 뒤뚱거리며 걸어다니는 카카포와의 유전적 거리감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이 조류의 슬픈 운명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새대가리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발전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녀석에겐 인간이라는 재앙이 찾아왔듯 나에게도 노화라는 순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스타벅스에서 지원해주는 학비로 한양사이버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부점장 진급에 필요한 까다로운 필기시험도 짬짬이 준비했다. 진급을 위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슬픈 멸종위기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착각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카카포에게만 재앙이 아니었다.
"말 귀도 못 알아먹네, 병신 같은 새끼."
올해 여름, 우리 매장 파트너가 고객으로부터 들었다는 말이다. 이 고객은 POS에서 '사이즈 큰 거 달라'고 말하고 벤티 사이즈 음료를 받았다. 고객은 더 큰 사이즈인 트렌타를 원했다며 소리를 지르고 이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어금니 사이에 끼어 빠지지 않는 음식물처럼 그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비스업에서 일하다보면 고객과의 마찰(혹은 일방적인 테러)은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열 길 물속 알아도 한길 사람 속 모른다는데, 우리는 이따금 고객의 아리송한 심연을 눈앞에서 맞닥뜨려야 한다.고객이 처음부터 잔뜩 불만을 품은 채 전화를 걸어오는 콜센터보다는 덜하겠지만, 이곳도 음료 사이즈를 잘못 선택했다는 이유로 '병신 같은 새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왜 그 고객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병신 같은 새끼'라고 했을까. 왜 그 파트너는 모르는 사람에게 '병신 같은 새끼'를 듣게 되었고, 왜 현장에서나 사후적으로나 어떤 문제제기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 고객에게 자식이 있다면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을까. 그 파트너의 부모님은 자식이 만원 남짓한 시급을 받으며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알고 있을까. 파트너가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하는 대표님께서는 우리 파트너가 '병신 같은 새끼'소리를 들었다는 걸 알고 계실까. 그 파트너를 채용한 점장님은 왜 일하다 '병신 같은 새끼'를 들을 수 있다고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았을까. 이 글을 읽고 '서비스업에서 일하다 보면 욕 한번 들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엇을 뜯어고쳐야 할까. 고칠 수 있기는 할까. 아니, 애초에 이게 잘못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노동운동가도 아니고,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도 아니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위해 내 한 몸 불사지르는 정의로운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얄팍하게 알고 있는 지식들을 짜깁기해서 '요즘 파트너들을 위한 최소한의 멘탈관리법' 같은 교양서 비스무리한 글을 써보려 했다.김승섭 교수님께서 쓰신 <아픔이 길이 되려면> 같은 책을 읽을 때면 내가 끄적인 문장들이동네 마트 전단지만도 못 하게 느껴졌다.
변변치 않은 머리를 달고 있어 야속했지만, 어디서 주워들어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카카포가 걸어다니는 영상을 보게 된 이후로 내가 이 귀여운 멸종위기종에 애정을 갖게 됐듯이, 무언가에 대해 작게나마 알게 되면 희끄무레한 관심 혹은 어떤 존중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그저 수많은 파트너 중 한명로서의 내 모습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스타벅스 파트너를 존중하고, 나아가 서비스업 노동자를 존중하고, 나아가 우리 옆을 스쳐지나가는 타인들을 존중하고, 나아가 자신과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존중하고, 나아가 전세계의 모든 호모 사피엔스를 존중하고, 나아가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나아가 이 생명체들에게 가장 해로운 호모 사피엔스 스스로가 멸종을 결정하여, 최후엔 귀여운 카카포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후퇴가 되리라.
이 기록에 사회고발이나 내부고발같은 건 없다. 르포르타주가 아니라 직업 에세이일 뿐이다.대외비를 유출시키거나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켜, 대출받은 전세금을 소송비용으로 몽땅 뺏기고 싶진 않다. 위의 사례처럼 파트너에게 '병신 같은 새끼'라고 하는 고객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우리에게 먼저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을 건네주는 분들이 더 많을뿐더러, 고객 응대가 우리 일의 전부도 아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고요한 새벽에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매장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을 좋아한다. 바쁜 출근길에도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는 고객을 좋아한다. 내 근본 없는 C급 유머에도 웃어주는 파트너들을 좋아한다. 내 일터에서일하는 내 모습도 배 나온 거만 빼면 제법 괜찮아 보인다. 월급이 거꾸로 가지 않는 한,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는 건물의 주인이 되지 않는 한 스타벅스를 그만 둘 계획은 없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이 회사가 내 피하지방을 축적시킨 죄는 시시비비를 가려볼 필요가 있지만 말이다.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타벅스 파트너로서첫인사말은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역시나 이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