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받은 샌드위치인데, 거의 워밍이 안 된 것 같아서요. 다시 데워주시겠어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한번 제공되었던 건 다시 워밍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그곳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원체 이해되지 않는 규정들을 마주치게 된다. 스타벅스에도 그런 규정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제공되었던 푸드는 다시 워밍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네? 샌드위치 안에 하나도 안 데워졌는데요?"
고객이 구매했던 샌드위치는 '치킨 베이컨 랩'이었다. 또띠아 안에 에그 스크램블, 토마토, 닭가슴살, 로메인 등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있는 랩 형식에, 안에 들어있는 소스가 잘 어우러져서 제법 인기 있는 샌드위치다.
문제는 이 샌드위치가 '겉은 따뜻하게, 속은 차갑게 해서 식감을 살리는' 컨셉이라는 점이었다. 오븐에 워밍(데운다는 한글이 있지만 파트너들은 워밍이라고 말한다. 내가 우쭐대려고 Warming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하기의 Food도 마찬가지다)할 때 또띠아 속까지 열이 전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른 샌드위치보다 오븐 돌아가는 시간을 짧게 맞춘다. 설명을 들은 고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아... 그럼 안에까지 따뜻하게 데워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하게도 규정상 그럴 수 없었다. 쿠션언어로서의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이때만큼은 진심 어린 "죄송합니다, 고객님..."이 튀어나왔다.
"이미 한번 데웠던 거라, 다시 워밍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스타벅스가 이 규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있다. 바로 교차오염 우려. 고객에게 푸드가 제공되었는데, 이 고객이 알고 보니 감염된 고객이었고, 고객이 한 입 베어 물면 푸드가 감염될 테니, 만약 그 감염된 푸드가 오븐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오븐도 감염된 오븐이 될 테고, 이후로 푸드를 드시는 우리 고객님들을 감염시킬 확률이 있다는 논리다.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하다. 문제는 전제에 있다.
우리는 푸드를 워밍할 때 콩순이 오븐이 아닌, 섭씨 260도에 육박하는 진짜 오븐을 쓴다. 유튜브 <안될과학> 구독자로서 한마디 하자면, 이 열풍에서 튀겨지지 않고 배기는 바이러스/세균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걸 지니고 다니는 생체병기에 대한 우려로 만들어진 매뉴얼이라면, 차라리 매장에 생화학 테러 방지를 위한 방독면 비치가 더 낫지 않을까?
스테이크하우스에서는 고객이 직접 먹어보고 온도감이 안 맞으면 추가 조리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 샌드위치를 고객 기호에 따라 채소의 익힘 정도 커스텀까지 만들자는 건 아니다. 다만 고객 입장에서 덜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다시 데워드려도 되지 않을까? 애초에 샌드위치의 내부 온도는 직접 한입 먹어보기 전까진 모른다. 또한 고객마다 따뜻함의 기준도 다를뿐더러, 파트너가 실수로 덜 데워서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아... 그러면 이렇게 먹어야 되는 건가요?"
이 덜 뜨거운 치킨 베이컨 랩을 규정상 다시 워밍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늘 고객의 불만에 귀 기울인다. 규정이 이상해도 사라지지 않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 규정을 보완해 주는 이상한 융통성 때문이다.
"고객님. 괜찮으시면 저희가 치킨 베이컨 랩 새것을 뜨겁게 데워드리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면 네가 건의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맞다. 스타벅스엔 '사이렌 아이디어'라는 이름으로, 파트너들이 직접 자유롭게 건의사항을 올릴 수 있는 일종의 파트너 신문고가 있다. 실제로 많은 파트너들이 좋은 내용들을 올려주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된 사안들도 많다.
하지만 내겐 그럴 용기가 없다. 조선시대에도 신문고를 올렸다가 반상의 법도를 어겼다 하여 낭패를 본 이들이 수두룩하다. 파트너 신문고에 글을 올리면 실명은 물론이고 닉네임에 매장까지 모조리 공개된다. 닉네임과 이름을 알면 사내 어플인 블라썸에 그 사람을 검색해 볼 수 있다. 이 인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볼 수 있고 심지어 핸드폰 번호까지 알아낼 수 있다.(놀랍게도 사이렌 아이디어엔 개인정보를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용기는 우리 매장 점장님에게 '치킨 베이컨 랩을 매뉴얼보다 뜨겁게 워밍해서 제공해 드리자'는 건의였다. 이 건의는 수용되었다. 덕분에 우리 매장에선 '속까지 따뜻한 치킨 베이컨 랩'을 먹을 수 있다. 이 맛있는 또띠아는 지금까지도 부동의 베스트셀러다.
식품을 취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교차오염에 대해 민감한 태도는 당연하다. 위생의 중요성은 수차례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으며, 실제로 모든 파트너들이 이를 위해 노력한다. 다만 비과학적인 영역까지 가지를 뻗어나가면 엉뚱한 곳으로 무게가 쏠리기 마련이다. 적당한 가지치기가 나무를 더 올곧게 자라게 하고, 위생 관리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 스타벅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