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점에서 우리 매장으로 전배 온 바리스타 테디를 처음 만난 날, 그에게 들었던 말이다. 레인은 그가 속해 있던 A점 점장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레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종종 늘어놓았다. 이 악담은 항상 '레인이 나를 싫어해서, 나는 수퍼바이저 역량인데 수퍼바이저 진급을 막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됐다. 공공의 적을 씹는 것만큼 가까워지는 방법도 없다지만, 나는 레인을 만난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해솔. 루키말이에요. 소문이 좋은 편은 아니던데. 맞아요?"
테디를 두 번째 만난 날 들었던 말이다. 루키는 우리 매장 점장이었다. 앞으로 본인이 일하게 될 매장 점장이자, 내 직속상관말이다. 그는 뒷담 자체를 '날씨 좋네요' 같은 가벼운 스몰토크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 뒷담의 대상이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이었으면 나았을 텐데. 좌파든 우파든 같은 성향의 누군가와는 친해졌을 수도 있을 테니까. 문제는 뒷담 대상이 같이 일하는 우리 매장 파트너들이었다는 점이었다.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파트너들 사이에 빠르게 피어올랐다. 수군거리기조차도 전에, 모두들 그에게 들었던 각종 뒷담에 대해 물음표를 띄우고 반감을 가졌다. 우리 매장으로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저 사람이랑은 함께 일하기 싫다'는 말을 해오는 파트너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민되었다. 한 달을 같이 일해보니 테디는 그 뒷담을 빼면 제법 성실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2년을 일한 그는 경력에 맞게 바리스타 업무 대부분을 잘 해내는 편이었다. 꾀를 부리는 것보단 착실하게 임하는 쪽이었다. 모두가 청소하기 싫어하는 문 앞 발판, 냉장고 뒤편 같은 곳도 본인이 먼저 나서서 하곤 했다. 무엇보다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스몰토크를 건네면서 좋은 인상을 주는데 탁월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말에도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문제였다. 저스틴 비버도 장례식장에선 정장바지를 단정하게 올려 입는다.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리비히에 따르면, 식물이 자라는 데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는 건 풍부한 영양소가 아닌 부족한 영양소다. 주요한 영양소가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 하나 때문에 식물은 자라기 어려워진다.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테디에게 아무리 장점이 많다 한들, '말의 무게'라는 중요한 부분에서의 결여 때문에 그는 끝내 매장 파트너들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일 못하는 건 가르쳐주면 된다. 틀리거나 까먹으면 제대로 할 때까지 가르쳐주면 된다. 우리 업무가 무슨 양자역학을 이용해 난수생성기를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반복하다 보면 결국 다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업무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성격적인 면을 지적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음만 같아선 "귀는 친구를 만들고 아가리는 적을 만들거늘! 갈!"라고 외치며 죽비나 곰방대로 머리를 한대 내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퇴사할 때까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꼰대가 되기 싫은 비겁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꼰대가 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원래 꼰대는 나이 많은 사람을 부르는 은어에 불과했다. 대체로 선생님이나 아버지가 꼰대로 호명되었다. 그때도 유쾌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오늘날엔 의미가 다듬어져 나이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간들을 통칭하고 있다.
젊다고 꼰대가 아닌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꼰대인 것도 아니다. 요즘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꼰대질하는 경우도 많다더라.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말이 있다. 핵심은 입을 닫는 데에 있다. 타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뭣도 모르면서 조언하지 말 것. 나보다 어리다고 그들이 지나온 날들을 무시하지 말 것. 직급의 위계를 이용해 부당한 지시를 하지 말 것. 말 것, 말 것 말 것... 그렇다. 꼰대가 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이었다!
꼰대가 되기 싫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과거 미국 부통령이 "아내가 아닌 여성과 절대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한 적 있다. 그는 중년 백인 남성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엘리트다.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성적으로 어떠한 불미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여성은 배제된다.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스타벅스 수퍼바이저인 나조차도 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게 된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가 발언을 한 시점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운동이 뜨겁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피해자들의 아픔 혹은 성폭력이 반복되는 사회 구조에 대해서 고찰하지는 못할 망정, 치졸하게도 입을 닫고 여성을 배제하는 쪽을 택했다. 그저 어떠한 순간에도 '가해자'로 지목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그저 제국의 부통령이라는 지위가 커피콩만큼도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여성과 단 둘이 같이 있지 말 것, 여성과 사적으로 대화 나누지 말 것, 여성과 같이 일하지 말 것, 말 것, 말 것, 말 것...
한때 내가 욕했던 부통령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에 비치었다. 꼰대적인 것과 성폭력의 무게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문제를 마주하는 방식에서 나는 그와 비슷했다. 복잡한 만큼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위치를 더 중요시 여겼다.
'꼰대가 되기 싫은 이유'가 나보다 어리고 경험 적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을 존중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탈권위적인 멋진 어른이라는 감투를 쓰고 싶었다. 아무 말도 안 하면 그만이니 또 얼마나 쉬운가.
치졸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치졸한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테디에게 아무 조언 하지 않은 게 한동안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어차피 내 조언이 딱히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합리화도 해봤다. 하지만 앞으로 두 번째 테디, 세 번째 테디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뭐라고 해야 될까. 나아가서 꼭 내가 만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뒷세대의 친구들이 겪게 될 사회에 대해서 나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잠언 17장엔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진다'는 말이 있다. 역시 침묵이 미덕인 걸까. 잠언 20장엔 '속임수로 빵을 먹고 나면 후에 입에는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는 말이 있다. 꼰대가 아닌 척하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