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엔 퇴사 후 다시 돌아오는, 일명 재입사 파트너가 제법 많은 편이다. 퇴사한 파트너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퇴사하지만, 돌아온 파트너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내가 다시 여기로 올 줄 몰랐어. 그래도... 여기만 한 데가 없는 것 같아."
공감한다. 나도 재입사 파트너니까.
스타벅스 첫 입사 후 4년을 다니다 퇴사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버티며 시나리오 쓰기에 몰두했다. <안나 카레니나>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완벽하게 쓰겠답시고 버티다가 결국 시나리오를 완성도 못한 채 퇴직금 통장이 동나버렸다. 작가의 벽은 높았다. 1년 만에 나는 다시 스타벅스 채용사이트를 찾게 되었다.
재입사는 집과 가까운 곳에 하고 싶었다. 입사지원 시 직접 1지망, 2지망 매장을 고를 수 있어서 가까운 순서대로 넣었다. 서류 통과 후 1지망 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남은 건 대면 면접인데, 내가 지원한 매장에서 점장과 일대일 면접으로 이루어진다. 이 면접에서 채용이 결정된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면접 보러 온 유해솔이라고 합니다."
매장에 도착해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수도 있을 POS 파트너에게 웃으며 첫인사를 건넸다.
"아무 데나 가서 앉아 계세요."
그 파트너는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접고 있었는데, 한 번도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 네."
면접 보러 온 을의 입장이지만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때까진 고객이었는데. 고객이기 전에 사람이 말하는데 어떻게 고개 한 번을 안 들 수가 있지? 그리고 나 때는(지금도 많은 곳에서 그렇게 한다) 면접 보러 온 사람에게 음료를 한 잔씩 내주곤 했다. 음료는커녕 쌀쌀맞은 응대에,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면접은 붙을 자신 있었다. 수퍼바이저로 일한 기간을 포함해 4년경력이 내 주무기였다.퇴역한 특수요원을 무시했다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빌런은 이미 대중매체에서 많이 다뤄졌다. 내게 5분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앞치마를 두르고 BAR에 들어가서 음료를 무차별적으로 제조해버릴 수 있었다.
면접 예정시간은 4시였다. 점장님께서는 4시 10분이 되어서야 파트너공간 문을 열고 나오셨다. 그녀는 테이블 내 맞은편에 앉았는데 처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 외모를 보자마자 당락을 결정한 건가 싶었다. 그녀는 면접 보는 내내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POS 파트너처럼내 눈을 거의 마주치지 않고 입사지원서만 보며 얘기했다. 입사지원한 건 입사지원서가 아니라 당신 앞에 앉아있는 인간인데 말이다. 이 페르세우스 점장은 나를 메두사로 여기는 듯 결코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형식적인 문답들이 빠르게 오갔다. 의미 없는 내용들이었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면접 막바지에 받았던 재입사와 관련된 질문만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스타벅스에서 일한 적 있으시네요. 저희 매장 엄청 바쁜 매장이에요. 음료 빨리빨리 빼야 되는데, 손은 빠른 편이세요?"
의아한 질문이었다. 내게 스타벅스 경력이 있는 건 맞지만 '중고 신인 채용 면접'이 아니라 엄연히 '신입 바리스타 채용 면접'이었다. 음료를 빠르게 제조할 수 있는 바리스타가 필요하다면, 신입을 채용할 게 아니라 타매장 바리스타의 인사이동 요청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빨리빨리 못 하는 사람은 채용될 수 없다는 뉘앙스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스타벅스 파트너 채용이 아니라, 자기 개인 카페에서 노예처럼 부리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것 같았다.
바쁜 매장이라고 으스대는 것도 우스웠다. 내가 가장 오래 일했던 매장은 항상 스타벅스 전체 매출 50위 안에 드는 매장이었다. 그곳에서 하루에 출근하는 파트너의 수가 이 매장의 모든 파트너를 합친 수와 같았다. '여기가 바쁜 매장이라고요? 일매출 얼마 나오는데요?' 되묻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속 좁고 생각이 불순한 인간일 뿐이지, 성격이 드러운 인간은 아니었다. 아마도.
"제가 되게 빠른 편은 아닌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예, 예. 전에 다녔던 매장 찾아보면 거기서 어떻게 일했는지 다 확인 가능한 건 아시죠?"
오늘 처음 만난 내게 '다 확인 가능한' 점장의 지위를 무기 삼아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난 빠른 편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갑이라는 걸 대사로 꼭 쳐보고 싶었던 듯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내게 눈길 한번 안 준 POS파트너와, 페르세우스 점장의 골 때리는 질문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졌다. 면접 볼 때부터 권위주의적인 면모를 흩뿌리는 분들인데, 신입은 어떻게 대하겠는가.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노스와의 대결에 앞서 수많은 미래를 보았던 것처럼, 이 매장에 채용되면 펼쳐지게 될 지옥 같은 앞날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붙어선 안 돼. 절대.
"확인 가능하다고요?"
"네, 그럼요."
"아... 사실 제가 좋게 퇴사한 건 아니었어서요. 파트너랑 트러블이 좀 있었어서..."
"무슨 트러블이요?"
"텃새를 엄청 부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퇴사했어요."
점장은 더 이상 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메두사가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것처럼, 몇 시간 후 채용이 어렵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행이었다. 참고로 나는 채용되지 못했음에 심술이 나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속 좁은 인간이 절대 절대 절대로 아니다. 진짜 진짜 진짜 아니다.
며칠 후 집에서 45분 거리의 다른 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면접을 볼 때는 음료를 한 잔 제공받고 편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다. 점장님께서도 내가 말할 땐 꼭 눈을 마주치셨다. 이곳에서 채용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퇴근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지겠지만 1분 거리에 대형서점이 있었고, 짧은 면접시간 동안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이 매장으로 채용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좋은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나를 떨어뜨린 매장은 우리 집 근처이기에 지금도 종종 들린다. 페르세우스 점장도 없고 메두사가 흘렸던 피도 이젠 지워졌지만, 둘이 앉았던 테이블만이 유적지처럼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