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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Oct 10. 2017

운악산, 삶의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가을색의 진경

가을산, 경기 5악, 현등사, 청량리, 병풍바위, 미륵바위, 1330-4

http://cafe.naver.com/hongikgaepo




놓쳤다.


버스를 예약해 놓고 놓쳐버렸다. 잘 없는 일인데 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한 일인데 어제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플레이를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3분의 1만 보자고 생각하고 눌렀더니....

이런,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별로 였으면 과감히 잠을 청했을 텐데 영화가 속도감 있게 흘러 도대체 스탑 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앤딩 크레딧을 보면서 2시간 자고 나가야 하는 상황, 일종의 영화와의 거래를 한 셈이다. 

아까운 차비만 기부했다. 

영화 제목은 밝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비극을 만들 순 없다. 

침대에서 눈을 뜨니 차 출발 시간 7시 30분을 2분 남겨둔 7시 28분이다. 슈퍼맨이 아닌 이상 날아갈 수도 없다. 이럴 땐 포기가 빨라야 한다. 

밥을 한 끼 못 먹었다고 죽을 순 없다. 

386 옛날 두뇌를 회전시켜 천리안 나우누리로 검색해 보니 '운악산'이 나온다. 

팬티엄으로 다음이나 네이버로 검색해도 같은 값이 나올 것 같다. 

예전에 뭘 타고 갔더라 생각하니 대중교통 검색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검색어를 이리저리 바꿔 1330-44 버스를 찾아낸다. 

옛날 컴퓨터의 부팅 걸리는 삐비 빅 삑 소리를 내며  '청량리역'으로 달린다. 

9시 정각에 도착한 청량리역에서 누군가 청량리역 환승센터 4번에서 타면 된다고 했으나 정거장에 안내가 없고 과거 1번 승강장에서 탔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 1번으로 이동한다. 의심하고 옮겼더니 거기에서 번호 노선을 발견한다. 이런! 배차간격이 두 시간에 한대라네.... 

나중에 기사님께 정보를 얻으니 한 시간에 한대 꼴로 있단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버스시간표를 촬영해온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나 2017년 10월 7일 현재 시간표다. 

사실 한 시간을 그냥 보낸 건 아니다. 

한 시간 기다리는 동안 청량리 롯데가 없어진 그 사실이 너무 놀라워 그 주변 사진을 찍는데 청소년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었던 곳이 모두 무너져 있다. 어릴 적 성바오로 병원을 다니면서 지나쳤던 빨간 정육점 같던 그곳이 한번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던 그곳의 무너져버린 사진을 찍으니 마치 6.25 전쟁 기록사진을 찍는 기분이다. 

동네 깡패가 다가온다.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한다. 

더 찍으면 사진기를 뺐어간단다. 

어릴 적 기억으로 나를 잡아갈 것 같던 그 아저씨가 동생뻘이 되고 나니 쓸데없이 겁주는 말에 코웃음만 치고 지나간다. 시대가 변하면서 세상은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자꾸 내가 갈아입을 헌 옷이 돼가는 건 아닐까 쓸쓸해진 기분이 마음에 머문다. 이제는 꽃 파는 아가씨도 없어지지만, 자본은 무엇을 또 만들어낼까?  






맑은 날씨의 버스여행은'구리' '남양주'와 '대성리' '남한강'을 따라 흐르다 '청평댐'까지 한참 막히는 정체를 뚫고 '청평역'에서 가는 다른 방법도 있는걸 안 다음 익숙하지만 달라진 운악산 초입에 다다른다.  

식당들이 서 있는 초입에서 사진을 찍다가 '일주문'과 왕께 상소를 올리고 자결한 민영환의 비가 있는 '삼충단'을 거쳐 임도길을 따라 올라간다. 

명절 연휴라 전에 항상 쉬던 바위에 힘들게 올라타서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다. 

골프장과 함께 첩첩산중에 하나둘 펜션처럼 생긴 건물들이 들어선다. 

항상 이맘때 오면 구름이 선명하게 보이다가 어두워질 무렵 구름이 흩어져 버리던 생각이 난다. 

지금 이 바위가 구른다면 난 어떻게 달려서 뛰어내려야지 하는 생각이 마치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처럼 상상하게 된다. 

'눈썹바위'에 이르러 목을 축이고 전설을 읽어 보니 어떤 바보 같은 총각이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훔쳤는데 선녀가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 하여 치마를 내어 줬더니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가고 총각은 선녀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이 바위가 되었다는 눈썹바위의 전설이다. 

전설을 읽고 '바보 같은 녀석'하고 속으로 웃는데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무서워 서둘러 이동한다. 

생각보다 거친 바위들을 타고 올라 '미륵바위''병풍바위'에 도달하니 아름다운 가을 색이 다 모여있다. 

가을이 이렇게 성큼 와 있구나 느끼며 스케치북을 펼친다.





































시간이 많지 않아 '암벽 타기'와 '외나무다리 건너기' 등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액티비티를 하며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위험한 길을 올라간다. 

경기의 5악이라더니 명성 그대로 험악하다. 비로소 정상에서 포천시의 운악산 동봉(937.5m), 가평군 비로봉 서봉(937.5m)의 사진을 찍고 정상을 인증한다. 산이 백두산처럼 갈라져 있어 정상석도 두 개다.

정상에 오르니 예상처럼 구름들이 흩어져 하늘에 쫙 깔려 있고, 분위기가 무겁다. 

늦게 한분이 올라오셔서 사진을 부탁해서 찍어드리니 배를 나눠주신다. 맛있게 먹고 먼저 내려가는데 바로 밑에 부부가 비박을 하신다. 부럽게 바라보고 인사를 건넨 뒤 '현등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전망대에서 '남근석'을 바라보고, 급경사로 내려가다가 '코끼리바위'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어두워져 절고개 방향으로 핸드폰을 켜서 내려간다. 

자칫하면 길이 아닌 절벽으로 죽음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지만 다행히 초행이 아니어서 '절고개폭포'를 지나 1시간여 만에 '현등사'에 도착한다. 

밤인데도 '현등사'에 불빛이 희미해 고민하는데 정상에서 배를 나눠먹었던 분이 랜턴을 켜고 내려오신다. 비박을 하실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하산하시는구나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같이 '민영환 암각서'와 '무우 폭포'를 지나 '일주문'으로 다시 내려온다. 가시는 길이 달라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30여분 기다리며 요기를 하고 8시에 출발하는 차를 타고 그리운 서울로 향한다.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아도 2시간 20여분 걸리니 그리 가까운 산은 아니지만 '설악산'과 '대둔산'의 동생 같은 산으로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손수 그 기암절벽을 타야 하기 때문에 삶이 무료하고 의미 없을 때 삶의 에너지를 다시 태울 장작 같은 매력 있는 산이다.  














201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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