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삼송, 오금천, 덕명교비, 공릉천, 벽제천, 벽제관지, 어반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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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역'에 내려 8번 출구로 나오니 이정표가 다른 곳에 비해 더 보이지 않아 길을 지나치고 갔다가 돌아오길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되돌아가 간신히 찾은 벽화거리, 옛날 시장의 한 줄기 길이다.
지금은 장사가 안되는지 사람도 없고 재미난 벽화와 간혹 지나는 사람과 고양이뿐이다.
길은 동네는 몇십 년 된 듯 나름의 분위기와 세월을 간직하고 있고 가게들도 오랜 시간의 떼가 묻어 그들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란 많은 것들을 멋들어지게 만들어 주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동네 한편 봄이 늘어지게 하품할 것 같은 풍경에서 스케치북을 펴고 스케치를 하는데 장을 보러 가시는지 신나게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할아버지가 정겨워 한쪽에 담는다.
관찰할 새도 없이 사라져 걸음걸이만 담는다.
그 뒤로 동네 도둑고양이가 강아지처럼 여유롭게 걸어간다.
길이 시작이라 여유가 없어 서둘러 걷는다.
동네를 빠져나오니 신도시 같은 아파트 단지길 옆 공원 밑길을 걷는다.
한참을 가도 리본이 보이지 않아 오늘이 '부활절'이라 주보에 성가지를 낀 채 집으로 돌아가시는 천주교 교우분이 있어 그분께 여쭤보니 잘 모르시는 듯 하지만 성의껏 가르쳐 주신다.
걷다 보면 많은 사시는 분들이 주변에 보물 같은 곳들이 있는 걸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분도 보물 같은 동네에서 좋은 여행 하시길 바란다.
길을 잃었을 땐 항상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게 지름길이다.
5분 정도 되돌아가니 육교 위로 올라가는 길을 지나쳤나 보다.
그 위로 올라 '오금초등학교'를 지난다.
주변에 백두산의 경계를 명확하게 확정 지은 '김지남'의 묘가 있다는데 '북한산의 파노라마 뷰'에 압도당해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쪽은 인수봉과 노고산이 함께 보이는 힘찬 뷰가 보여 우리 집에서 보이는 반대쪽이다.
뷰를 보며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천이 나온다.
이름하여 오금천이다.
천이 작아 자전거길과 인도도 아기자기하게 작게 만들어져 있고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물 따라 걷다 보니 '덕명교비'가 나타난다.
다리를 지은 이들의 이름을 적었던 비로 여겨지는데 많이 지워졌단다.
북쪽에는 '광개토대왕비'며 많은 잊혀진 문화재가 세월 속에 남겨져 있다.
역사적 가치가 밝혀지길 바란다.
그곳에서 스탬프를 찍고 길을 이어가니 나타나는 '오금천'과 '공릉천'의 합수부, 그곳에서 '공릉천'을 다시 따른다. '공릉천'을 따라 걷는데 길을 건너갔다 다시 건너오게 된다.
강길이 쭉 뻗어 지루할까 봐 배려한 듯 보이지만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한참을 가다 '벽제천'과의 합수부가 나타난다.
건너편 '인수봉'이 빼꼼 올라와 있고 그 밑으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연인의 발걸음에 운율을 살핀다.
'통통 토로롱.... 척척 척척.... 통통 토로롱~ 척척 척척!!!!'
발걸음의 운율로 그들의 연애사를 훔쳐보는 기분이라 조심스럽다.
그 발걸음을 살펴보며 아빠 웃음 짓는 듯한 인수봉이 믿음직스럽다.
'벽제천'을 따라 오른다.
'벽제천' 옆에는 길 따라 비닐하우스가 많다.
어르신께 꽃 이름도 물어보고 딸과 노니는 아버지의 모습도 살펴보며 벽제천 따라 거닌다.
사실 벽제는 화장터 이미지가 강해 벽제천마저도 인도의 갠지스강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것처럼 무언가 무거운 이미지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벽제'는 중국으로 북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벽제관지'에 도착해 가자 마치 구도시를 품은 신도시처럼 아파트들과 옛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벽제관지는 중국 사신들이나 중국으로 가는 관료들이 머물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흑백사진과 터만 남았다.
그곳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고 마을을 둘러본다.
많은 것들이 오래된 것이라고 허물고 다시 짓는 이 세계 속에 오래된 것은 역사고 우리의 뿌리이자 근간이다. 옛것을 찾아 그것을 다시금 생각하고 누리기 위해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
그 역사 유물 속에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2022,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