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데이먼스 이어 <Yours>
일주일 내내 감기에 시달렸습니다. 팬데믹 시절에는 코로나와 독감 한번 걸리지 않았는데, 연초부터 컨디션이 심상치 않더니, 침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붓고, 스치는 바람에도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지만, 목에 누군가 주먹 만한 돌을 억지로 욱여넣은 듯, 타는 듯한 통증이 정말이지 괴로웠어요.
문득 어린 시절, 아팠을 때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미화되어 추억이라 부를 만큼 아련한 장면들이요. 저는 옛날부터 편도선이 잘 붓고, 쉽게 체하는 아이였어요. 감기에 걸렸을 때는 달큼한 향이 나는 새빨간 물약을 먹었는데, 취향에 맞았는지 그 약이 먹고 싶어 또 감기에 걸리고 싶다 생각했을 정도예요. 배탈이 나면, 엄마는 제가 확실히 나았다 싶을 때까지 흰 죽만 줬어요. 아픈 것보다 아파서 맛있는 음식을 못 먹는 서러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몰래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 먹다 엄마에게 들켜 혼난 기억도 나네요. 그래도 돌이켜 보면 아플 때만큼은 바쁜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어서, 또 잠들기 전까지 배를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엄마와는 멀리 떨어져 살고, 할머니는 천국에 계신 지금, 몸이 약해졌을 때는 내가 누구보다 든든하고 너그러운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소에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려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지만, 이번 주만큼은 스스로에게 인심을 베풀었어요. 화요일에는 퇴근 후 죽을 먹고 싶다는 나에게 중식당에서 1,600엔짜리 죽을 대접했고, 도시락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은 수요일에는 회사 식당에서 오징어 튀김 샐러드를 사 주었어요. 목요일에는 몸 상태가 심상치 않길래 아예 회사를 하루 쉬게 해 주었고요. 하고 싶은 게 많은 한 해이니, 이럴 때라도 스스로의 어리광을 받아 주어야 다시 약한 내가 힘을 내지 않겠어요?
물론 오롯이 혼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웬만한 일본 처방약보다 효과가 좋았던 미국 감기약을 구해 준 사람, 퇴근 후 커피 약속을 흔쾌히 미뤄주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살고 봐야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요’라며 희망찬 메시지를 선물한 사람, 손수 만든 생강청을 따뜻한 메모와 함께 쥐어 준 사람, DM으로 아프지 말라고 다독여 준 사람, 그리고 내 방 문고리에 즉석식품과 과일을 비닐봉지에 담아 걸어 두고 간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한 주를 보내고, 드디어 완전한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오늘의 혼밥은 인스턴트 죽과 겉절이입니다. 사실 미리 만들어 둔 겉절이가 없다면, 이번 주에는 일기를 올리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지금 이 글도 사실 오늘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겨우 쓰고 있거든요.
죽은 용기에 담아 랩을 씌우고, 표기된 시간에 맞게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 배추를 절이지 않고 간편하게 만든 겉절이를 올렸더니, 매콤함에 입맛이 돌더라고요. 유년기,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서인지 매운 음식도 잘 못 먹고, 김치 없이도 잘 사는 편이었는데, 역시 나이가 들 수록 고향을 속일 수 없게 되나 봐요.
재료: 배추 1/4통, 부추 한 줌
양념: 고춧가루 4T, 까나리액젓 3T, 새우젓 1T, 다진 마늘 1T, 간 생강 1t, 매실액 2T, 설탕 1T, 참기름 2T, 깨 1T
1. 양념을 만들어 큰 볼에 담아 둔다.
2. 부추를 씻어 5~6cm 길이로 썬다.
3. 배추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깨끗이 씻어 준다.
4. 2와 3을 1에 넣고 잘 버무린다. 두꺼운 줄기 부분은 며칠 뒤에 먹는 편이 좋다.
오늘의 추천곡은, 봄을 기다리며 듣는 데이먼스 이어의 Yours입니다.
내가 손을 잡을게 너는 힘을 빼도 돼
그저 복사꽃 핀 거릴 걷자
너의 마음이 녹아 우리 밤을 합치면
무너진 달을 세워놓자
내일은 한 해 중 가장 추운 대한이라지요. 그 말은 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곧 어디선가 매화가 고운 얼굴을 내밀고, 벚꽃이 거리를 (그리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물들이고, 복사꽃도 흐드러지게 필 거예요. 약속해요.
그러니 우리, 이 추위를 조금만 더 견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