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너드커넥션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저는 제가 가진 것을 잘 간수하는 멋진 어른이 못 됩니다. 물건을 오랫동안 고이 아껴 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정반대예요. ‘마이너스의 손‘이 제 얘기인가 싶을 정도로 제 손에 들어온 물건은 대체로 수명을 다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 잃어버리거나 망가져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가성비 제품을 선호해요. 제가 전자제품이나 가전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대체로 SPA 브랜드를 두르는 것도, 무엇이든 밝은 색보다 어두운 색을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랍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나’로 살아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터득한 요령이지요.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던 2023년 12월 어느 날에는 하루 동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려 후면 유리가 산산조각 나고, 청소를 하러 책상 위치를 바꾸다가 책상 위에 있던 (두 달 밖에 안 쓴) 브리타 정수기가 떨어져서 깨지고, 또 뚜껑을 열어 놓은 펜촉이 커튼이 닿는 바람에, 베이지색 커튼에 검은 멍 같은 자국이 생겨 버렸어요.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원상복구가 가능한 파손 또는 훼손이지만, 최근 부쩍 여유가 없어진 제게는 그 모든 사건이 굉장히 절망적이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바스러진 휴대폰 후면 유리를 케이스로 가리는 태연함과, ‘어차피 조금 더 작은 용량의 브리타 정수기를 사고 싶었어’ 라며 새 상품을 주문하는 긍정적인 마인드, 그리고 커튼에 남은 펜 자국 정도야 교훈으로 남겨 둘 수 있는 무던함으로, 부족한 지갑 사정을 보완할 수밖에요. 한때 ’대충 살자 ~처럼‘식의 밈이 떠돌았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대충 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제가 괜찮아야, 다 괜찮을 수 있으니까요.
그저 내가 무심코 상처를 주고, 흠집을 내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오늘 요리는 대충 만들어도 건강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돼지고기 숙주 전골입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노후자금이 없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제목 그대로 노후자금이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 알뜰한 주부가 연달아 내놓는 메뉴예요. 돼지고기도숙주도 다른 재료에 비해 저렴한 편이거든요. 게다가 어차피 폰즈 소스나 참깨 소스에 재료를 찍어 먹으니 국물 간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고, 남은 국물로는 저녁에 국수를 삶거나 죽을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재료: 돼지고기 120g, 숙주 200g, 양파 1/4, 대파 1/4, 부추 5, 두부 150g, 배추 약간, 혼다시 1t, 미림 1T, 소금, 후추 약간, 참기름 1T, 폰즈 소스
1. 숙주와 양파, 대파, 부추, 배추를 씻는다. 숙주를 제외한 채소는 한입 크기로 썰어 냄비에 올린다.
2. 키친타월로 핏물을 제거한 돼지고기와 두부도 올린다.
3. 물 500ml에 혼다시와 미림을 넣어 붓는다.
4. 재료가 다 익으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두른다.
5. 재료를 찍어 먹을 폰즈 소스를 따로 담아낸다.
국물 요리에 소주를 마시며 한껏 감성적인 저녁을 보내고 싶은 날, 추천곡은 요즘 제가 빠져 있는 너드커넥션의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입니다. 멜로디는 밝으니 걱정 말아요.
삶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죠
내가 많이 사랑했던 게
나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더니
나를 매달고 싶대요
알아요 나도 수없이 해봤어요
노력이라는 걸 말이에요
근데 가난한 나의 마음과 영혼이
이제 그만해도 된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