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옥상달빛 <없는게 메리트>
삶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를 동경해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연습이 지겨워 일치감치 포기한 뒤에는 만화책에 빠져 만화가를 꿈꿨어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심리학 서적을 즐겨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고, 실제로 관련 학과에 진학해 임상심리학 대학원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언어학 석박사 과정에 합격해 이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첫사랑을 따라(<첫사랑은 슬프다는데, 맥모닝> 편 참조) 한국에 오는 바람에 포기했고, 잠시 방황하다 운 좋게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으니, 이제 정말 다 된 줄 알았지요(그 사이에 호텔학교와 로스쿨과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거나 한국어교원양성과정을 수료한 이야기는 생략할게요.)
그런데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도 만만치 않아, 3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일본으로 도피 유학을 와 버렸어요. 대학원 졸업 후, 스타트업 회사와 여행사 콜센터를 거쳐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지금 회사에 정착했답니다. 나름대로 글을 쓰며 자아실현도 하고 있으니,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잘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요즘 또다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저는 조직생활이 잘 맞는 편이 아니라,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인정받거나 승진하고 싶다는 욕구가 전무하다시피 해요.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일하다 정시에 사라지는 저를 이 회사에서 환갑까지 써 줄 것 같지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인세와 번역비로 생계를 유지할 수준도 아니고, 지나치게 오래 살 경우를 대비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방법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저는 꼭 경제적 이득이 보장되지 않아도, 정말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가능하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또, 중학교 이후로 한국에서 한국어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우리나라 말로 수업을 듣고 리포트를 써 보고 싶기고 하고요. 직장과 병행하기에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사이버대학교라,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 한국어교육학과, 상담심리학과, 인공지능학과 등을 기웃거리는 중인데,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조금씩 활용할 수 있는 저만의 길이 과연 무엇일까요?
아직 어느 분야에도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올해는 다이빙과 운전면허 취득으로도 시간이 빠듯할 테니, 진로 고민은 잠시 유예해 볼게요.
오늘의 요리는 저의 중구난방식 경력을 대변하는 짬뽕으로 하려고 했으나, 만들기가 어려워 카레로 바꿨습니다. 제 책 <도쿄 근교를 산책합니다>에도 카레 사랑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어요.
평생 한 가지 요리만 먹고살아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까. 이 장난스러운 질문을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해 온 내 대답은 카레다. 잔뜩 끓여 놓으면 며칠간 다른 메뉴를 찾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기도 하고,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니 다른 음식에 비해 덜 질릴 것 같다는 계산이다. 카레는 고기나 해산물, 채소 등 넣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 아니라, 소스도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강황을 듬뿍 넣어 황금빛이 돌고 매콤한 우리나라 카레에서부터 짙은 갈색에 가깝고 부드러운 일본식 카레, 설탕과 크림 등을 가미해 서양인 취향에 맞춘 영국식 카레, 코코넛밀크를 듬뿍 넣어 달콤한 태국식 카레, 그리고 향신료의 배합에 따라 무한히 변화하는 본고장 인도의 카레까지….
밥솥 카레는 일본식 카레에 가깝지만, 가장 번거로운 단계인 재료 다지기와 양파 카라멜라이징을 생략된 획기적인 레시피예요. 완성 후 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을 추가하거나 냄비에 옮겨 졸이면 됩니다.
재료: 밥 1공기, 고형카레 2조각, 다진 쇠고기 100g, 양파1, 토마토3, 가지1
1. 토마토와 가지의 꼭지를 제거하고, 양파는 껍질을 벗겨 씻은 후 다진 쇠고기와 고형카레와 함께 밥솥에 넣어 1시간을 쪄낸다.
2. 완성된 카레를 주걱으로 잘 섞어 준다.
2. 밥을 접시에 담고 3을 올린다. 취향에 따라 달걀프라이와 다진 파 등을 더해도 좋다.
2024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통장 잔고를 열심히 쌓아가야 하는 저를 위한 응원곡, 옥상달빛 <없는게 메리트>으로 글을 마무리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