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좋아서하는밴드 <예쁜섬>
지난주 어느 날에 저는, 퇴근 후에 한 시간 동안 심리 상담을 받고, 약속을 앞두고 위스키 한 잔으로 예열한 뒤, 함께 있으면 즐거움이 보장되는 사람들과 가게 세 군데를 전전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휴대폰에는 음식 사진보다 하이볼을 든 제 사진이 더 많이 남았어요. 볼도 마음도 말랑말랑한 친구가 예쁘다, 귀엽다, 를 연발하며 수백 장을 찍어 줬거든요. 그의 앱으로 자동 보정된 저는 세상 아무 걱정 없다는 듯 미소 짓고 있더라고요. 아주 해사하게요. 즐겁다는 말로 모자랐습니다. 속 이야기도 많이 하고, 듣고, 웃고, 웃기고 그런 명랑한 밤이었어요. 명랑… 명랑이라, 봄만큼 어감이 좋은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숙취 해소 젤리 덕분인지 생각보다는 멀쩡했던 그 밤, 전철을 타고 까만 하늘을 가로지르며 집으로 돌아와 노래까지 틀어 놓고 잠에 들었습니다. 명랑하게요. 아침에 도착한 메시지가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저의 현실을 깨우쳐주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늘, 기대가 문제입니다. 스쳐 지나가도 될 사람들은 다정한 말 한마디로도 저를 살게 하는데, 당신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려주고 싶어도 늘 악의 없이 나의 말문을 막기에, 지독한 회피형인 나는 가면을 벗을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도 제 사랑의 최선, 혹은 최선의 사랑이겠지요. 언젠가 누구도 나의 말에 상처받지 않게 될 때,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요.
밝은 소식도 있습니다. 기다리던 도쿄의 연분홍빛 벚꽃, 소메이요시노가 피었거든요. 만개하기 무섭게 야속한 봄비가 약속처럼 쏟아졌지만, 궂은 날씨를 견뎌준 벚잎 덕분에 무사히 꽃놀이를 즐겼어요. 한국에서 찾아온 제 방 첫 숙박 손님과 함께요.
그가 돌아간 금요일, 조금은 휑하게 느껴지는 방에서 선물 받은 김부각을 와그작 씹어봅니다. 신오쿠보의 한인 슈퍼에서도 김부각을 팔기는 하는데요, 디핑 소스에 찍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바삭하지 않아요. 이번에 놀러 온 언니에게도 선보인 크림치즈젓갈 소스는 크림치즈 100g에 창난젓 50g(일본에서는 ‘창자チャンジャ‘라고 부릅니다), 꿀 한 숟가락을 섞어 만듭니다. 사실 비율을 따지지 않아도 맛있는데, 이곳에 남기기 위해 계량을 해 보았어요. 물론, 제가 개발한 건 아니고요.
저는 개인은 하나의 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이 노래를 듣고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송이의 꽃을 품고
동동동 떠 있는 외로운 섬이라네
고개를 돌려 서로를 안고 안으면
하나의 섬들은 커다란 세상
좋아서하는밴드 <예쁜섬>
다 괜찮아질 날이 오리라 믿어요. 일본이라는 낯선 섬에서도 내게 품을 내어 주는 작고 고운 섬들이 있으니까요. 부디 그들이, 너무 일찍, 멀리 떠내려가지 않기를. 숨지도, 잠기지도 말고 언제까지나 팔 뻗으면 닿는 곳에 있어 주기를.
이 또한 욕심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