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안녕하신가영 <나의 하루는 너무 길다>
3월의 마지막 일기를 쓰며 이달의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혼자서는 도무지 비워지지 않는 마음의 응어리, 혹은 불순물이 많아, 약속을 참 많이도 잡고, 그 시간을 기대하느라 본연의 삶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혼자 좀 있고 싶다, 혼자 있어도 괜찮겠다 싶은 걸 보니, 한 달간 부지런히 통장과 위장을 축내 가며 사람들을 만난 보람이 있네요.
중학교 때,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오른 몇 번의 무대 중 <어린 왕자>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여우 역할을 맡았는데, 이 대사를 좋아했어요.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너무 감명 깊게 읽고 외운 탓인지, 이 대사는 그로부터 몇십 년 간 이어지는 최면, 혹은 저주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거든요. 기다려지는 일이 있다면, 그 설렘에 압도되어 현실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합니다. 약속한 상대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무엇을 먹고 어디를 걸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일’을 그리느라, 오늘 ’ 내 일’을 등한시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번 달에는 모든 만남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답니다.
어제는 문득 이런 결심을 했어요.
삼월은 털어내는 달, 사월은 (주어진 수입 안에서 잘) 살아내는 달, 그리고 오월은 다시 온전한 내가 되는 달이라고요.
유월에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개정판을 무사히 출간하고 나면, 하반기에는 삶의 새로운 장을 펼칠 준비를 시작해야지요. 작년보다 늦게 꽃을 피우려 하는 도쿄의 벚나무처럼, 나의 봄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오고 있다고 믿어 볼게요.
이번 주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나눠 먹기 위해 제육볶음을 만들었어요. 어릴 때 자주 먹은 요리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식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제가 아꼈던 사람들은 다들 제육볶음을 좋아했습니다. 고춧가루만 넣고, 고기를 먼저 익히고, 물을 넣는 등 다양한 레시피에도 도전해 봤지만, 저는 이렇게 만드는 게 가장 편하더라고요. 동네 슈퍼에 청양고추를 팔지 않아 넣지 못했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달걀프라이를 올리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귀찮아 포기한 것도요.
재료(3-4인 분): 얇게 저민 돼지고기 600g, 양파 1/2, 대파 1/2, 마늘 4-5알, 식용유, 깨 약간
양념: 고추장 3T, 고춧가루 2T, 매실액 2T, 간장 2T, 다진 마늘 1T
1. 대파와 양파, 마늘을 먹기 좋게 썬다.
2. 키친타월로 핏기를 제거한 고기에 양념을 섞고, 냉장고에 30분 이상 둔다.
3.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대파와 편마늘을 올려 강불에서 기름을 낸다.
4. 재워 준 고기를 잘 떼어 양파와 함께 3에 넣고 중불에서 볶는다.
5. 고기가 익고, 양파가 투명해지면 그릇에 담고 통깨를 뿌린다.
그러고 보니 가슴 아픈 소식이 있네요. 사진 속 유미코 이이호시 그릇이 깨져 버렸거든요.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작년에 구입했는데 말이에요. 분수에 넘치는 물건이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금이 가도 슬프지 않을 저렴한 덮밥 그릇을 보러 다녀야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이 노래를 자주 들었습니다. 최근 혈액암 완치 판정을 받아 저를 기쁘게 한 가수 안녕하신가영 님의 <나의 하루는 너무 길다>.
나의 하루는 너무 길다
어떤 날은 비가 내리고
또 다른 날에는 갠다
그러다 무지개를 만나
웃어 보일 수도 있겠지
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아무리 좋았던 하루라도 그 끝에는 어두운 밤이 덮치고 마는 인생의 순리를, 편안히 받아들이며 3월을 마무리하시기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