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에피톤 프로젝트 <손편지>
옷장 속 재킷과 코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봄에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이제 정말 완연한 봄날이라고 선언하기 무섭게 아직 데워지지 않은 바람이 파고듭니다. 월요일에는 잠깐이지만 에어컨을 틀었는데, 화요일에는 온풍기를 틀었습니다. 수요일과 목요일 출근길에는 늦겨울에 입던 코트를 꺼내 입었고요.
나의 기분도 컨디션도, 날씨처럼 오락가락합니다. 몸에 좋은 습관은 간헐적으로, 몸에 좋지 않은 습관은 착실히 지키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저 봄처럼 쉽게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겨울이 지나면 분명 꽃이 피고, 곧이어 한 치의 의심도 허용치 않는 여름이 찾아오듯, 내 영혼 역시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겠지요.
처음 심리 상담을 시작할 때 나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비를 떨어트릴 준비가 된 흐린 하늘 같은 마음으로 상담실에 들어가 결국 티슈를 여러 장 적시고 말았지요. 낯선 사람 앞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거르며, 꺼내놓을 수 있는 기억들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때보다 딱히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상담사 선생님과 통화할 때면 웃기도 합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 입장에서 재해석된 사실을 쏟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모순과 편견, 인지 왜곡 등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언제나 같아요. 나는 나만 생각하기로 합니다. 내가 즐거운 일이라면 합니다. 해소할 자신이 없는, 불편한 감정을 주는 사람과는 거리를 둡니다.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춥고 더운 날을 반복하는 것이 봄의 본질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꽃이 핌과 동시에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은, ‘행복’과도 같은 찰나이지요. 환상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짧아도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봄에는 생의 감각도 죽음의 감각도 뚜렷합니다. 벌써 죽은 벚잎들이 눈처럼 바닥을 뒤덮어요. 그래서 어쩌면 인생과 가장 닮아 있는 계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스스로에게 이런 걸 먹였습니다. 채소 가게에서 가장 저렴한 야채 세 개를 골라 카레 베이스를 잔뜩 만들어, 다음 날에는 다진 소고기를, 그다음 날에는 해물을 넣어 먹었어요. 내 방 첫 숙박 손님이 사 온 컵누들 로제 맛으로도 세끼를 해결했고요. 동네 슈퍼에서 보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든 비비고 새우부추만두는 기대만큼 맛있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오일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 <오로라>를 재미있게 읽어서, 책에 나오는 요리와 레드 와인과 함께 인스타그램 리뷰용 사진을 찍었거든요. 이번 주 제 방에서 만든 요리 중에서는 가장 공을 들인 메뉴네요. 소설 속에서는 그저 담백하다고만 표현되고, 면 종류나 자세한 재료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좋아하는 아티초크 통조림과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활용했어요.
재료: 펜네 파스타 100g, 마늘 2p, 새우 8, 방울토마토 5, 아스파라거스 2, 통조림 아티초크 10p, 소금, 올리브유
1. 물에 소금 1t, 올리브유 1t를 넣고 끓인다.
2. 펜네를 1에 넣고 10분 간 삶는다.
3. 면을 삶는 동안 마늘 두 알을 편 썰고, 올리브유에 익힌다.
4. 마늘이 노릇노릇해지면 새우, 적당한 크기로 썬 아스파라거스, 아티초크, 방울토마토를 순서대로 익힌다.
5. 4에 펜네를 넣고 함께 볶으며 면수로 간을 한다.
6.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한다.
사진을 찍으며 창밖의 햇살을 느낍니다. 지금은 18도네요. 나는 봄에도 봄을 그리워합니다. 오랫동안 나의 봄노래를 갖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플레이리스트 사이를 헤맸지만, 와닿는 노래가 없었어요. 그러다 이미 제 보관함에 있던, 2010년에 발매된 에피톤프로젝트 <손편지>의 노랫말이 어느 날 들어와 매일 듣고 있어요. 차세정 가수님의 목소리도 참 포근하고요.
봄으로 가자, 우리 봄에게로 가자
지난 겨울밤 흘렸던 눈물을 마저 씻고
다시 그대와 날 뜨겁게 반기던 봄에 가자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이번 주말, 봄으로 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