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스웨덴세탁소 <두 손, 너에게>
나를 살뜰히 챙기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위로의 말을 수집한 한 주였습니다. 고독과 우울을 SNS에 전시하는 일에는 늘 약간의 자괴감이 따르는데, 얼굴 모르는 수취인으로부터, 그리고 조금은 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다정한 답장을 받는 날들이 있었거든요.
<도쿄 혼밥 일기>의 설익은 문장을 기껍게 읽어 주시는 분들의 라이킷과 댓글, 그리고 메시지를, 저는 부적처럼 여깁니다. 친구나 지인의 따뜻한 감상도요. 수요일, 한밤 중에 약속도 없이 만난 누군가는 부정적인 감정을 부정만 하는 자신과 달리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저의 모습이 부럽다고 했어요. 또 다른 분은 익숙한 멜로디와 낯선 노랫말로 살아가는 기쁨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요. 덕분에 다음 날, 웃으며 출근길을 행진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글을 읽지 않아도, 타고난 낙천성으로 만날 때마다 저를 무장해제시키는 친구도 있고, 꼭 저만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중년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길목에 가장 어여쁜 모습을 포착해 주는 친구도 있네요. 이번 주에 그들을 세 번이나 만날 예정입니다.
당연히 세상에는 제게 관심 없는 사람이 더 많고, 저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도 존재하지요. 그러나 제게는 노력 없이도 드문드문 주어지는 다정함이 더 크고 귀합니다. 설령 찰나일지라도요.
어쩌다 나는 나로 태어나, 이토록 사람들의 친절함을 입는 것일까요. 제가 뭐라고요.
물론 ‘어쩌다 이런 인간으로 태어나’라며 한탄한 적도 있었습니다. 심리 상담을 하며 실시한 TCI(기질 및 성격 검사) 결과가 돌아왔는데, 저는 상반된 기질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인 사람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자극을 추구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높아요.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리니 마음 편한 날이 없죠. 그러나, 호기심 많고 이기적인 제가 아직 법의 선을 넘지 않은 것 역시 백분위 97퍼센트에 육박하는 위험 회피 성향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정서적 공감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서적 개방성이 낮다는 결과도 흥미로웠습니다. 타인의 감정은 기민하게 파악하지만, 그에 따라 나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뜻이래요. 오래전, 약속이 있으면 좀처럼 연락되지 않는 저를 어르고, 달래고, 회유하고, 협박하던 연인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의 불안과 절망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지만, 제가 결코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알아 저 역시 괴로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밖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는 깊이 내재되어 있지만, 냉정하고 독립적인 성향을 타고난 점도, 낯을 가리고 내향적이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나를 낱낱이 드러내는 점도,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합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하더라고요. 상황에 따라 나의 상반된 면면을 적절히 활용해 쓰는 연습을 하면 된다고요. 30대 중반, 일생 나를 괴롭혀 온 모순을 객관적으로 파악했으니, 지금부터라도 잘 단련하면 성숙한 중년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의 혼밥 메뉴도 어김없이 부실합니다. 몇 주 전 한국에서 사 온 컵누들 로제맛과 마라탕맛이 요즘 제 주식인데요, 인스턴트식품만 덩그러니 올리기가 민망해 급히 장을 봐 쇠고기 숙주말이를 만들었습니다. 실은 향긋한 부추를 야들야들한 차돌박이에 싸 먹고 싶었는데, 집 근처 슈퍼에는 둘 다 없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지요. 제 유전적 기질처럼요.
재료: 얇게 저민 쇠고기 7장, 숙주, 소금, 후추, 통깨
1. 키친타월로 고기의 핏물을 제거하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2. 고기에 숙주를 넣고 돌돌 만다.
3. 중불에서 돌려가며 모든 면을 골고루 익힌다.
4.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이 글을 쓰는 일 외에 아무런 일정이 없었던 오늘, 할 일을 마친 저는 일찍 침대에 누워 이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들려합니다. 스웨덴세탁소의 <두 손, 너에게>. 좋아하는 목소리, 가수 최백호 님이 부른 부분의 가사로 인사를 대신할게요.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아서
눈을 깜빡이는 넌 아주 아름답단다